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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죽어야 한다

흐르는 물3 2008. 12. 29. 17:26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온갖 역경과 고난을 딛고 마침내 일본을 거머쥐어 자신만의 에도막부를 세워 오늘날의 일본의 틀을 갖추게 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인생자체가 드라마틱한 소설이므로 소설의 좋은 소재이며 그의 일생은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으로도 그려졌고 시바 료타로 등도 소설을 썼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일생이 소설 <대망>에서 그려진 것처럼 찬양일색이라는 데 있다. 

 

소설이 한국에서도 읽혀지고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을 반대했던 전력과 임진왜란을 사과하며 조선통신사를 받아들인 사실로 인해 한국에도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기도 한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소설은 소설이고 이에야스의 일생은 소설 속의 좋은 이미지만 간직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1,2위를 다투기 때문인지 일본인들은 그의 어두운 면이나 나쁜 점을 비판하는데 인색하고 이에야스와 그가 세운 에도막부의 나쁜 점에서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오늘날 일본의 사회관습과 일본인의 특징이나 성격은 모두가 에도막부의 강압정치를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우리에서 조선의 관습이 남아있듯이 에도막부 260여년은 일본인의 가슴을 관통한 화살처럼 깊숙하게 꽂혀 거부할 수 없는 큰 그림자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에야스의 일생은 고난과 역경 그 자체였으며 이마가와 요시모토, 오다 노부나가, 또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에게 굴복과 항복으로 일관한 일생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마지막 순간 일본을 먹어치웠고 자신의 그림자를 일본에 남겨 지금도 일본인의 모범이 되고있다.

 

그렇다면 이에야스는 어떤 인물이었으며 어떤 인간이었는가? 과연 그는 소설속에 그려진 것처럼 일생동안 일본평화를 위해서 애써온 인물이며 백성들을 사랑한 인물이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는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과 같으며 절대 서두르면 안된다" 는 말을 남긴 것으로 회자되기도 하고 후세사람들이 그의 일생을 보고 지어낸 이야기라고도 한다.

 

이말은 곰곰히 음미해 보면 정말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을 통일한 사람이 한 말이고 일본에서는 위대한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말은 그대로 일본의 특징짓는 말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본받아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일본이 자랑하는 치밀한 계산과 신중한 처신을 강조하고 자랑하는 것은 그대로 이에야스의 절대로 서두르지 말라는 말과 그의 토사구팽식 용인술을 따른 결과다.

 

과거 한가하고 말이나 타고 달리던 시절에는 이말이 들어 맞아 성공 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말을 금과옥조로 받들고 있는 일본이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실패하는 이유는 아직도 이말을 신봉하고 이에야스같은 행운을 바라며 변화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야스의 성공은 오다 노부나가 49세, 도요토미 히데요시 62세에 죽은데 비해 74세까지 남보다 오래 살았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고 행운도 작용했다. 그는 남이 죽기를 기다려 성공한 전형적인 사람인 것이다.

 

일본이 삼성이 망하기를 기다리고 다른 나라가 잘 안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유명한 것은 모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남겨놓은 유산이다. 행운이나 성공은 적극적으로 자기 일생을 개척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가만히 앉아서 이루어 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에야스는 이런 행운을 이용하여 무사의 무사에 의한 무사를 위한 에도막부를 세웠다. 그리고 나머지 93%의 백성들은 철저하게 무시되며 개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에야스가 용서받을 수 없는 점은 일본 백성들을 억누르고 꼼짝 못하게 하여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부동의 무사정권을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도 계속된다는데 있다.

 

이런 체제는 막부를 타도한 메이지 유신 이후로도 이어져 불만에 찬 하급무사들은 군국주의를 탄생시켰고 복종하는 습성에 길든 일본 민중들은 자신도 무사가 된 것 처럼 착각하며 타국을 침략하는 도구로 쓰여져 살인과 학살과 야만적 행동의 주구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본인의 죄악의 정점에는 늙고 노회한 너구리 영감이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다.

 

일본인들은 맥아더 사령부조차 또 다른 에도막부이며 오늘날의 자민당 정권도 또 다른 에도막부로 본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맥아더에게 굴복하고 항복했던 것이 정당화 된다.

 

또 지금의 일본자민당 정치인들은 40%정도가 자신의 부친이나 조부에게서 물려받아 세습하는 정치인들이다. 고이즈미도 아베도 후쿠다도 그렇고 심지어 차기 총리로 유력시 되는 민주당의 오자와도 마찬가지다.

 

권력자가 아들에게 세습하는 것을 싫어하는 한국과는 정말 다르지만 일본인들이 막부시대가 아닌 오늘날까지 소수의 무사들의 후예인 세습정치인들이 권력과 돈을 독점해도 일본인들이 체념하고 아무말 안하는 습성도 모두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에서 나온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는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을 강력하게 옭아 매는 오가작통법으로 연대책임을 지우며 고발을 강조했다. 

 

자유로운 마을간 이동을 금지하려고 아소강의 다리도 끓어 놓아 자급자족을 강요했다. 대외적으로는 쇄국정책으로 이른바 우물안 개구리가 된 것이다. 일본인의 폐쇄성이 생겨난 것도 전적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죄다.

 

이 시대의 하급무사와 백성들은 오직 에도막부와 그 추종자들 만을 위해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 전통은 지금도 살아 있어 오직 자민당 만을 위해서 일본백성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이 시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재평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은 스스로는 절대 하지도 않으며 일본에서는 이에야스가 나쁘다고 말하면 총 맞을지도 모른다.

 

후지오카 노부까스 등 일본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면서 내 세운것이 자유주의 역사관 이며 역사란 자기들 마음대로 자유롭게 평가하는 것이란다. 우리는 왜 못하는가?

 

뉴라이트의 이영희도 이번에 뉴라이트 교과서를 발표하며 역사는 역사학자 만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도 일본 역사를 평가해 보고 감추어진 추악함을 들추어 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에야스의 재 평가를 철저히 해 연재해 보려고 한다.

 

일본은 조선의 잘못을 지적하며 일본이 통치해야 한다며 갖가지 조작을 일삼았고 조선 역사서를 불태웠다.똑같은 이치다. 에도막부는 메이지 유신의 정당성을 준 잘못된 정권이다. 그 잘못을 강렬히 파헤쳐 비판하는 것은 옳다고 본다.

 

얘들은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누나 심지어 이순신 장군까지 비판논리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나는 이에 대항코저 도쿠가와 이에야스 비판논리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일본이 반성치 않는 원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잘못된 정책과 그의 음습한 성격에 있다는 것을 밝혀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도몬 후유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오다 노부나가 평전을 쓴 사람으로 유명한데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친구가 없었다" 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 그는 친구가 없었고 아무도 믿지 않았으며 부하에게도 속마음을 감추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잇단 피살과 생모의 이혼과 생이별 그리고 10년여에 걸친 소년시절부터의 인질생활은 그에게 굴욕적인 삶을 강요했고 친구를 사귈 기회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에야스만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는 모두가 그랬다. 서열을 존중하고 상관과 강한 자에게 굴복을 당연시 하는 일본에서 동료간의 관계는 서로 돕고 배려하는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동료를 밟고 출세해야 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동료간의 관계는 현대 일본에도 이어졌다. 일본의 금과옥조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 일이 아니면 외면한다. 이말은 친구가 없다는 말과 같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도 돕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2006년 월간 조선 12월호에서 소니의 침몰을 분석한 미야자키 다쿠마 는 자기 부서의 일이 아니거나 담당자가 아니면 신경 쓰지도 않는 풍조가 소니의 몰락의 한 원인이라고 했다.

 

"남의 실수와 잘못이 나의 행복" 이라는 이런 일본사회의 풍조는 동료 간의 협력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과 반목과 질시를 유발한다. 

 

그래서 그는 소니의 멸망 원인이 놀랍게도 자기 회사의 잘못된 점을 경쟁관계에 있는 부서가 알면서도 이를 보고도 않고 동료와 경쟁부서의 몰락을 즐기는 그릇된 경쟁풍토에서 나왔다는 것으로 소니 직원들의 애사심과 충성심을 비판하고 있다.

 

이렇듯 이에야스가 만든 일본의 상하관계는 철저하여 쉽게 깨지지 않지만 동료나 친구라는 수평적 협력관계는 없어지고 무한 생존경쟁만이 남았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일본은 명령에 복종하는 세로 수직적 사회라고 단언하고 협동이 없는 것을 아는 상관들은 결사적으로 명령 하달에 목매는 것이다.

 

친구 관계란 오성과 한음, 이율곡과 성혼의 관계이며 서경덕과 황진이의 관계도 남녀를 초월한 친구관계다.

 

동료 관계란 조광조와 기묘명현의 관계, 끝까지 죽음을 함께 한 사육신 간의 관계를 말한다.

 

중국에서도 관중과 포숙의 아름다운 친구관계가 있건만 일본역사에서 친구관계와 동료관계란 눈을 씻어도 찾을 수 없으니 진정 특이한 사회라 할 수 있다.

 

마에다 도시이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오다 가문의 가신으로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히데요시는 권력을 잡자 그의 굴복을 요구했다. 그래서 히데요시에게 굴복하고 삶을 도모한다. 동료관계가 주종관계가 된 것이다.

 

그는 후에 이에야스에게도 굴종하며 살아 남아 명문가를 이루었는데 이는 비겁한 처세술의 전형으로 삼아야 하건만 그를 일본 최고의 무사중 하나로 치부하고 있으니 무엇이 참된 무사의 길인가? 이는 일본무사도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무사의 처세술이란 실력이나 검술이나 인격이 아니라 아부와 충성과 굴욕이 최고이며 혼네를 감추고 웃으며 도게자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덕목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당대의 권력자였던 이마가와 요시모토,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모두 관계를 맺었던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다케다 신겐,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은 모두가 자신의 힘으로 당대의 권력자가 되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만은 희한하게도 굴복과 항복과 도게자로 살아 남아 온갖 수모와 굴욕을 겪으며 권력을 잡았고 결국 반대나 비판이 용납되지 않는 일본에서 부하들에 의해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에야스가 한신(韓信)을 좋아했다는 말은 결국 불량배의 가랭이를 기어 나간 그의 행동을 비겁한 자기에게 비유해 합리화 하려는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풍류를 즐기고 형식과 멋을 중시하는 안하무인의 권력자였다. 이에야스는 그의 인질로써 그의 조카딸과 결혼하여 감시와 멸시를 감수해야 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에서는 이전에도 이후로도 절대로 없는 사람이다. 그의 성격상 다테마에는 필요없었고 이에야스는 그의 명령대로 자기의 본처와 장남 노부야스를 죽여야만 했다. 남에게 복종하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자기의 부인과 장남을 죽이는 넘에게 일본 제일이라니... 참 수치스럽고 창피한 줄 모르는 일본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농민의 아들로써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장 싫어했다. 그는 자기과시가 심했지만 이에야스에 비하면 솔직 담백한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될 정도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그가 무서워 15세면 결혼하는 당시로서는 어이없이 강제 이혼당한 44세의 히데요시 여동생을  본처로 맞이해야 했다.

 

이런 당대의 권력자 3명을 거치면서 그에게 다테마에가 없었다면 그는 살아남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온갖 굴욕을 감수하며 마침내 일본을 손아귀에 거머쥐고 자신의 막부를 세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역경을 이긴 전형적인 인간승리로 불수도 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비판 받는 것은 그후 일본인을 편하게 한것이 아니라 온갖 악법으로 일본인을 더욱 옮아 매며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죽이고 연대 책임을 지우며 모든 일본인에게 혼네와 다테마에를 가지게 하며 겉으로는 복종하는 로봇같은 현대 일본인의 전형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본처와 자식을 죽이고 자기 생모와 사는 의붓 아버지의 하마마쓰 성을 공격하던 이에야스의 굴곡진 인생은 그에게 혼네를 감춘 음흉한 성격을 갖게하고 혼네와는 다른 다테마에의 언행과 행동을 하게 했는데 이게 에도막부를 거치며 형성된 전형적인 일본인의 본질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중성을 가질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하고 정당화 하며 본받는 것은 후레자식들이 사는 나라나 다름없다. 나는 일본에 도덕과 윤리 교육이 없었던 것이 그런 풍조를 낳았다고 본다.

 

도몬 호유지 는 오다 노부나가를 평하면서 그가 전통과 악습을 타파하고 이룩 하려던 밝고 활기찬 일본이 이에야스로 넘어 가면서 우울하고 읍습한 강압적 통제적 일본이 되었다고 했다.

 

이에야스의 말대로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어서 그는 경거망동은 죽음을 의미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이말은 이에야스가 한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서 물은 부하를 배는 주군인 자신을 의미한다.  그는 부하조차 믿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그것을 일본인들은 이에야스의 용인술(用人術)로 한껏 자랑한다.

 

바보같은 일본인들은 이에야스의 혼네와 다테마에를 앞세운 읍습하고 음흉하며 부하도 믿지않는 성격에 놀아 났으면서도 그것을 찬양하고 훌륭한 용인술이라고 좋아하니 그것은 일본인들 스스로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생은 남에게 솔직할 수 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속 마음을 감추어야 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그의 이중성을 당연시하는데 이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혼네와 다테마에의 원조라해도 무방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닌 오다 노부나가가 대머리 아께찌 미쓰히데에게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면 오늘의 일본은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라는 도몬 호유지의 말은 의미심장하고 가슴에 와 닿는다.

 

아쉽게도 이에야스 이후 일본에는 오다 노부나가를 닮은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일본은 여전히 혼네를 감추고 남의 속이나 떠보는 것을 신중함이라고 자랑하다가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스피드가 없어 일본은 점점 더 외톨이가 되어 간다.

 

일본기업들은 정확한 판단력으로 신속하고 빠른 결정을 내리며 자기들의 몫을 빼앗아 가는 삼성과 현대, 엘지, 포스코 등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서는 것을 구경해야 했다.  

 

일본은 지금 어렵다. 이미 금년초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이미 일본은 일류국가가 아니다" 라며 일본이 이미 이류국가로 전락했음을 만천하에 인정했다.

 

그래서 이젠 일본이 자랑할 것도 없다. 오직 과거에 조선을 망하게 하고 식민통치 한 것에서 위안을 받고 80년대의 영광을 아직도 진실로 믿으며 휴지를 아랫도리에 대며 부르르 떨지만 일본은 세계최대의 채무국가라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말인지 일본인 스스로도 헷갈리는 이런 상황을 일본인 스스로도 인정하니...  도대체 앞에서 말하는 것이 다테마에 인줄 알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참고 넘어 간다는 사람은 이세상에 일본인 뿐이다.

 

일본인은 속마음을 꿰뚫으면 즉시 항복한다.  눈을 맞추며 잡아 먹을 듯이 몰아 부치며 속 마음을 꿰뚫으면 일본인은 오줌을 지리며 혼네를 말하고 만다. 이것은 오다 노부나가가 즐기던 방식이고 협객 김두한이 쓰던 방식이다.

 

눈에는 양쪽 눈 다 뽑고 이에는 이빨 몽땅 뽑는 것이 일본인을 이기는 방식이다. 화해와 평화를 말하며 방심하면 얘들은 또 칼로 뒤에서 찌른다. 오다 노부나가 식의 인정사정 없는 보복과 혹독함은 우리가 일본에서 배울 것으로 일본인을 이기는 방식이고 김두한이 사용한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너무도 그것을 잘 알았지만 본인은 정작 아께찌 미쓰히데의 다테마에에 속아 죽었으니 정녕 일본을 위해서는 아까운 일이고 노부나가도 속을 만큼 일본인의 거짓 다테마에가 위험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를 즐겁게 하는 맥아더 장군이 "일본에 침입하면 죽창으로 싸우겠다며 1억 총옥쇄를 외치던 다테마에" 가 막상 일본에 상륙하니 온갖 군사기밀을 술술 불어대며 자기를 살려 달라던 혼네를 접하고 나서 일본인의 정신연령은 13세 수준이라며 일본인을 비웃은 것은 정녕 정확한 안목으로 감탄이 나온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에 남긴 혼네와 다테마에는 일본인 스스로도 자랑하는 성격이어서 과거 세계가 가면 쓴 일본인의 다테마에에 속을 때는 일본이 발전했지만 이젠 누구도 일본의 다테마에에 속지 않아 일본이 추락하는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현대 일본을 옥죄고 오직 명령에 복종하는 일본인을 칭찬하며 창의성이 사라지게하여 일본을 망친 원흉이다.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