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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오다 노부나가 경영 10법칙

흐르는 물3 2007. 2. 15. 17:38
서문〉난세를 이겨낼 열쇠는 인재다

 

“현재의 일본은 전국(戰國時代: 15세기 중엽, 일본의 다이묘들이 군웅할거했던 동란기, 하극상의 시대로도 유명하다)과, 막말(幕末: 1853~1867. 근대화를 향한 격변기로 일본의 개국, 군사독재시대가 끝나는 등 굵직한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이 동시에 도래한 듯하다.” 일본사회는 안정된 시대가 막을 내리고 동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규모는 일본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것이다. 하지만 한탄하고 있어봤자 소용없다. ‘대 경쟁 시대’에 접어들었다면, 우선 필요한 것은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새로운 시대 인식이란 다음과 같다. ‘세계는 동란의 시대로 들어섰다.’ 그리고 ‘전국시대는 쓰러뜨리든지 쓰러지든지, 먹든지 먹히든지 둘 중에 하나다.’

 

전국시대의 대표자는 말할 것도 없이 오다 노부나가이다. 약소국가인 오와리(尾張: 현재의 아이치 현)의 작은 세력이었지만 전국의 패자가 되어 천하통일 바로 직전까지 간 인물로, 그 합리적인 정신은 무한경쟁시대인 현대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 일본은 지금, 시대의 변혁기를 맞아 노부나가와 같은 혁명가를 원하고 있다. 노부나가의 삶의 방식은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크게 참고가 된다. 그의 생애는 전쟁으로 여념이 없었으며, 그 삶의 모습은 상식인의 방식이 아니었다. 노부나가의 비범함은 어떠한 위기에도 주눅이 들거나 약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제나 대범하고 과감하게 싸웠다. 노부나가가 시도한 건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한다’, ‘적의 몇 배의 병력을 갖춰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하고서 싸운다’, ‘공을 세운 만큼 듬뿍 상을 내린다’ 등으로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전법은 일본 역사상 달리 유례가 없다. 노부나가는 여느 전국다이묘(戰國大名: 16세기 일본 전국시대에 넓은 영지를 다스리던 무사로, 토지와 농민을 일원적으로 지배하는 분국分局을 두고, 가신단을 조직하고, 농민을 직접 지배 하에 두는 등 분국의 지배․세력 확대를 위한 군사력 강화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경제력 확보에 힘썼다)와는 다르다. 전국시대에는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가 전부다.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경영은 ‘전투 집단 수립’이 테마가 될 것이다.

 

현대의 경영인들에게 바치고 싶은 다섯 가지

 

뜻을 품자

노부나가 : 동란의 시대에는 어두운 이야기가 많지. 허나 남 위에 서는 자는 스스로 흔들림 없는 신념을 세우고 자신의 사명을 향해 주저 없이 나아가야만 하네. 중요한 건 뜻을 세우는 일이야. 자신이 무엇을 위해 애쓰고 있는가, 그 일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것을 가늠해야만 하네. 전국시대는 각 무장들이 영토 확장을 노리고 패권을 다투었지. 허나 적을 이기고 영토를 확장했다 치더라도 그것이 그저 사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거라면 별 의의가 없어. 나는 천하통일을 노렸으니 그건 전란을 다스리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어.

수강생 : 저도 10년 전 큰 뜻을 품고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사원은 현재 50명입니다. 요즘에는 실적이 순조로워 1억 엔의 경영이익을 보았습니다. ‘작지만 출중한 중소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노부나가 : 그대의 말은 통 알 수가 없군. 사업이 순조롭다고 했는데, 그런 소규모 회사인 채로 만족한다면 그대의 목표는 너무나 낮군. 좀 더 커다란 목표를 가졌으면 하네만. 마냥 중소기업 상태로 있는 것을 자랑하는 건 우습지 않은가.

 

포기하지 마라.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라

노부나가 : 동란의 시대에는 옛 세력이 쇠퇴하고 그것을 대신하는 자가 등장하지. 이 하극상의 시대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에겐 바람직하지 못한 세상이겠지. 하지만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도전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넘쳐나는 재미있는 세상이다. 성공할 수 없는 인간은 도중에 포기해버리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야. 성공하기까지 도전을 계속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네.

 

〈에피소드〉교토행을 위해 7년간 거듭한 집념의 미노 공략

노부나가 하면 흔히 성질이 급하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나 잘 살펴보면 오히려 무척 참을성이 강하고 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노 공략에 7년, 이시야마의 혼간사本願寺 공략에는 11년이나 정열을 쏟아 부었다. 다케다 가쓰요리를 무찔렀을 때도 상대가 내부 붕괴로 자멸하기를 7년이나 기다린 후에야 공격했다. 노부나가는 백전백승이었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때때로 크게 패할 경우도 있었으나 패전을 반성해, 태세를 정비하고 몇 번이라도 물고 늘어졌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한 번 정한 목표는 집요하게 계속 쫓는 것이 노부나가라는 사람이었다. 노부나가는 에이로쿠 3년(1560년) 5월,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물리쳤고 그 직후인 6월에는 미노의 사이토 요시타쓰를 공격한다. 실제로 미노를 공격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미노에는 강들이 몇 줄기나 되는 지류를 만들어 복잡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지형에서는 지리에 밝은 사이토 측이 유리한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사이토 측이 동원 가능한 병력은 오다 측의 몇 배나 되었다. 그럼에도 노부나가가 미노에 집착했던 이유는 교토로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미노 공략은 노부나가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예상외로 애를 먹었던 노부나가는 곧바로 동쪽의 미카와 공략과 동시 진행 중이던 작전의 불리함을 깨닫고, 이에야스와 동맹을 맺기로 한다. 유명한 기요스 동맹이다. 동방의 안전을 굳힘으로서 노부나가는 미노 정복만을 목표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병력을 한 곳에 집중시켜야만 강고한 적을 부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 경영으로 치환해보면〉중소기업은 특기 분야로 승부하자

노부나가에게는 ‘타협’이란 말이 없다. 자신이 이것이라 믿은 일은 단호하게 뚫고 나갔다. 노부나가만큼 목표가 분명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노부나가의 전투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오케하자마이다. 적은 수로 대군을 물리쳤다는 의미로도 그야말로 통쾌한 일전인데, 이 전투는 현대에 사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중소기업이라도 전법에 따라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노부나가는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증명해주었다. 경영자가 승리자의 대열에 끼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경영이 잘 풀리지 않고 있다면 애초에 자신은 무얼 하고 싶었는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인 것이다. 스스로가 정열을 바칠 수 있는 일을 하면 라이벌에게 질리가 없다. 또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기기 위한 다섯 가지

 

뛰어난 인재[多士濟濟]를 모아 적의 세 배 이상의 병력을 갖춘다

노부나가 : 우선 중요한 것은 인재이네. 인재층의 두터움이 조직의 힘을 결정짓는 걸세. ‘전쟁’이라고 듣고 전투를 떠올릴지도 모르지. 전쟁터에서 싸우는 용맹무쌍한 무장을 떠올리며 ‘인재’라고 여길지도 모르고, 물론, 그 역시 중요한 인재이지만 칼을 휘두르는 인간만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어. 전쟁에서 이기려면 분야별로 유능한 인재를 모으는 일이 필요하네. 전쟁이라 함은 여러 직종의 인간이 모여야만 가능한 총합전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전쟁이라는 것은 다수가 소수를 제압하는 것이 상식이지. 허니 적의 세 배의 병력을 모으고 나서 전투에 임해야 할 것이야.

수강생 : 노부나가 공의 싸움 하면 오케하자마 전투가 연상됩니다. 요시모토가 이끄는 열 배 이상의 군세를 이기지 않으셨습니까. 그걸 생각해보면 소수로 다수를 제압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노부나가 : 나는 정보 수집에 힘을 기울이고, 호우 속에서 요시모토의 목을 쳤네. 결과적으로 작전은 성공했지만, 만약 다시 한 번 해보라고 한다면 성공할 자신은 없어. 나는 오케하자마 이후 도박 같은 승부를 한 적이 없었네.

수강생 : 현대의 경영에서는 ‘소수정예’가 환영받고 있는데요.

노부나가 : 굳이 말을 붙이자면 ‘다수정예’라고 해야겠지. 싸움은 기본적으로 병사의 수로 결정되는 법. 해서 나는 언제나 인재를 모집하고 유능한 무사와 선비를 맞이했던 게야.

 

〈에피소드〉가신을 연달아 다이묘로 임명

덴쇼 원년(1573년), 무로마치 막부는 무너졌다. 한편 노부나가는 점차 천하의 지배자가 되어갔다. 이즈음 노부나가는 가신들에게 나라를 분배하기 시작했다. 이들 각 장수는 이력 또한 가지각색이다. 구 막부의 신참자, 신진의 소영주 층도 있었으며, 구 영지에서는 옛 가신도 배분을 받았다. 공적과 실력 중심이라는 합리주의가 여기에서도 관철되고 있다.

 

패전에서 배워 다음 기회에 살린다

노부나가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는데 옳은 소리다. 우리 오와리 병사가 약졸이라는 건 유명했다. 오와리는 이웃한 미카와나 미노에 비해 너무나도 약했어. 그런 약졸들을 이끌고 싸워야 하니까 작전이 중요해지는 게야. 나는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동시에 패전도 적지 않았네. 졌을 때는 ‘가신이 무능했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 되네. 패전에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법이니, 그 원인을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전략을 뿌리에서부터 다시 분석해봐야만 하는 게야. 싸움에 있어 중요한 건 정보 수집과 면밀한 준비, 대국적인 전략일세.

 

〈에피소드〉의외로 많았던 노부나가의 패전

노부나가의 전투력을 짚어 올라가다 보면 의외로 패전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대처가 능란해 치명적인 손실을 입은 적은 없었다. 혼간사 공략 때의 일이다. 노부나가를 고민하게 만든 것은 뜻밖에도 조총이었다. 사이카 사람들의 조총부대는 이단, 삼단의 사격을 행함으로써 오다군을 마지막까지 괴롭혔다. 노부나가는 네고로의 승병(조총으로 무장한 강대한 세력을 자랑했던 무리)들을 대거 고용해 부하들을 훈련시켰고, 최강의 소총부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나가시노 전투에서 완벽한 승리를 이룩해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모리 수군과의 첫 전투도 패배였다. 원래부터 오다군은 해전이 주특기가 아니었을 뿐더러 모리 수군의 실력조차 모른 채 행해진 전투였었다. 모리 수군은 교묘한 배 운용술과 호로쿠(자기로 된 단지 안에 화약을 채운 것으로 현재의 소이탄과 비슷하다. 원래는 참깨나 찻잎을 볶는 질그릇을 의미)라 불리는 화기도 있어 오다 수군은 전혀 당해내지 못했다. 그때 노부나가가 생각해낸 비책은 철판으로 둘러싼 철갑선이었다. 배에 철판을 둘러두면 적의 화기를 봉쇄할 수 있다. 이 철갑선 덕으로 2회전에서는 완승을 거두었고, 그 결과 혼간사는 보급로가 끊겨 항복하게 되었다.

 

근대 병기를 구사하라

노부나가 :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부단히 연구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지. 과거의 인습에 사로잡혀 있어선 아니 되네. 나는 젊었을 때 창을 연구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네. 기존의 창보다 긴 스물한 자(약 6.3m, 한 자는 약 30.3cm)짜리 장병창(자루가 몹시 긴 창) 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어.

 

에피소드〉미치산을 신음하게 만든 장병창

노부나가는 덴분 22년(1553년) 미노의 사이토 미치산과 오와리 나카지마군 후쿠다의 쇼토쿠사에서 첫 회견을 가졌다. 노부나가가 스무 살 때의 일이다. 노부나가는 보명 700명 전원에게 갑옷을 두르게 하고, 스물한 자의 장병창과 조총을 500정식 장비하게 했다. 그 당시 다네가지마에 조총이 전래된 지 10년쯤 된 무렵으로 조총은 값비싼 귀중품이었다. 그런 물건을 500정이나 갖추고 있었으니 미치산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바지랑대만큼 긴 장병창 역시 미치산의 시선을 붙들었다. 미치산은 “병기의 특출함과 수량이 전쟁을 지배한다는 걸 저 얼간이는 알고 있구나” 하며 감탄했다. 노부나가와의 회견 후에는 “참으로 유감스럽지만, 우리 산성(미치산을 뜻함)의 아이들은 저 천치의 대문 앞에 말을 매어두게 될 것이야(노부나가의 가신이 될 것이라는 뜻)”라고 측근에게 푸념했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무기라면 우선 조총이 떠오르겠지만, 이 장병창도 노부나가다운 합리적인 무기였다. 당시의 창은 열두 자에서 열다섯 자가 표준이었다. 그러니 스물한 자라는 길이는 독보적이었다. 노부나가는 이 장병창을 군비軍備의 중심에 두었다. 이제껏 창은 개인전에서 적을 꿰뚫거나 혹은 다가가 말을 노리기 위한 것이었지만, 노부나가는 이른바 ‘뒤덮는 창槍衾’이란 전법을 만들어냈다. 창 부대를 일렬로 늘어세우고 최전선의 적들에게 돌격시키는 것이다. 창 길이의 차이로 상대는 돌격을 허용하고 만다. 훈련이 부족하기 마련인 보병들에게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집단전법이었다. 대량의 병사를 모아 조총과 병용하면 활이나 태도太刀보다도 효과적으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러한 창 사용법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고, 이 또한 노부나가의 독창성의 발현이기도 했다.

 

〈현대 경영으로 치환해보면〉일본경제패전의 원인은 인재를 살리지 않는 기업풍토에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일본은 60~70년 주기로 ‘성장기→안정기→쇠퇴기→혼란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메이지유신 후에 태평양 전쟁이라는 대혼란기가 있었고, 거기에 뒤이어 지금은 경제패전이라 불리는 혼란기 상황이다. 일본은 미국의 페리가 이끄는 흑선에 의해 쇄국의 잠에서 깨어났다. 흑선을 계기로 메이지유신이 일어난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외압만이 원인은 아니다. 막부 말기에는 막부나 번(藩; 다이묘가 다스리던 영역)이나 재정 파탄으로 파산 상태였다. 그렇기에 번주들이 대정봉환(大政奉還; 막부가 쥐고 있던 국정을 천황에게 다시 되돌림)에 동의한 것이다. 재정 파탄에 이르게 된 까닭은 오랜 기간에 걸친 신분제도 때문에 인재 등용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탓이다. 메이지유신은 하급 사족(士族; 무사계급)과 농민이 주체가 되어 일으킨 일종의 쿠데타였고, 이 메이지유신 덕에 일본은 기력을 되찾았다. 태평양전쟁은 참으로 한심한 싸움이었다. 패배의 가장 큰 이유는 군 상층부의 무능함이었다. 아무 전략도 없이 어이없는 전투만을 거듭하다 급기야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 후가 지금의 경제패전이다. 이 패전의 원인은 과거의 역사와 매우 흡사하다. 일본은 사회의 안정화가 진행된 탓에 옛 ‘신분제’ 성향이 강해졌다. 정치가의 자식은 정치가가 되고 사장 자식은 사장이 된다. 자산가는 자식들을 비싼 사립학교에 넣어 어린 시절부터 교육에 힘을 쏟는다. 기업은 신입사원채용 시 학력에 연연해한다. 기업 내의 승진은 연공서열 추세가 강하다. 일본기업이 외국 세력에게 이기는 비결은 인재 등용을 추진하는 일이다. 연령이나 입사 이력, 학력, 성별 등에 일절 사로잡히지 말고 인재를 모집하자. 그리고 적재적소에 이들을 배치하고 그 사람만의 재능을 발휘하게 만들자. 그 능력을 살린다면 부활의 길은 열린다.

 

 

인재를 채용하는 다섯 가지

 

‘천하포무’라는 높은 가치를 올려라

노부나가 : 우선 필요한 건 “자신은 천하를 쥘 인간이다”라고 선언하는 일이네. 인재 모집은 크고 높은 목표를 내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네. 내 경우엔 “전국의 세상을 평정하고 평화를 실현하여 무사가 통치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든다”란 것이었네. 그런 의미를 담아 ‘천하포무’라고 말한 것이지.

수강생 : 현대의 경영에서 참고한다고 하면 경영 이념을 소중히 하라는 뜻이 되는 건가요?

노부나가 : 옳거니. 자신이 싸움에서 이겨 최고가 되었다 치더라도 그저 사욕에서 비롯된 거라면 아무 의의도 없다. 역시 세상에 도움이 되겠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네. 전국시대의 싸움은 싸움이 끝남과 동시에 약탈이 시작됐어. 나는 그와 같은 행패를 일절 허용하지 않았네. 내가 도쿄에 들어섰을 때 수도 사람들은 약탈을 겁내 도망친 자가 많았으나, 오다군은 규율을 준수하고 있다는 걸 알자 바로 돌아와주었다네.

 

언제나 문을 연 채 출신에 상관없이 맞아들여라

노부나가 : 전국시대는 적에게 이기느냐 지느냐일세. 해서 나는 적에게 이길 수 있는 전투 집단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하는 점만을 생각했지. 내 머릿속에는 ‘출신’이나 ‘신분’이란 단어는 없었네. 설사 선대의 가신이더라도 무능한 인간은 필요 없어. 거꾸로, 능력만 있으면 어떤 인간이든 등용했어. 히데요시만 해도 원래 농민 출신이었지. 미쓰히데는 명문 아케치가 출신이었지만 떠돌이에 불과했고. 다키카와 가즈마스 역시 닌자 출신이었어. 이러한 인재 등용 방식이 다른 전국다이묘와 달랐던 점일세.

 

〈에피소드〉닌자 출신이었던 다키카와 가즈마스

노부나가 군단의 간부들을 살펴보면 감당하기 힘든 개성파의 집합소였다. 출신성분이 불분명한 수상쩍은 인간들을 잘도 이만큼 모아놓았다 싶다. 그중 한 사람이 다키카와 가즈마스다. 가즈마스는 오우미 코가군 출신으로 오케하자마 전투 후에 노부나가를 모시기 시작했다. 노부나가는 가즈마스에게 기타이세를 공략할 것을 명했고 가즈마스는 그것에 성공한다. 그 상급으로서 에이쿠로 12년(1568년)에 기타이세의 다섯 군郡을 하사받아 오다가의 주된 가신들 중 가장 먼저 일국일성을 소유하게 된다. 일개 낭인 신분에서 다이묘로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현대 경영으로 치환해보면〉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자

최근, 신문 경제란을 들여다보면 인원 삭감에 관한 기사가 눈에 띈다. 나는 이 인원 삭감에 이의를 외치고 싶다. 회사의 경영자는 자사의 발전이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인원 삭감’은 ‘회사의 발전’과는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노부나가의 전국 재패 과정을 떠올려보라. 노부나가는 적극적으로 인재를 맞아들여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살려나가는 것으로 세력을 넓혔다. 이것은 ‘영지가 늘었으니 인재를 채용했다’가 아닌 ‘인재를 채용했기에 영토가 늘어났다’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다가의 발전은 인재 획득의 역사’이기도 했다. 기업의 목표는 고정비를 웃도는 순이익을 벌어들이는 게 핵심이 된다. 그렇기에 기업은 확대와 재생산이 숙명인 것이다. 그 확대재생산을 꾀하려면 신상품을 개발하거나 신규고객을 개척해나가는 일이 필요한데 그런 일을 벌이려면 인재가 필요하다. 라이벌 기업에 이기기 위해서 지금이야말로 경영자는 적극적으로 간부를 스카우트해야 한다. 학력과 일하는 능력은 이퀼(=)이 아니다. 기업이 바라는 건 ‘학력學歷’이 아니라 스스로 배워나갈 수 있는 ‘학력學力’이 있는 인재다. 그리고 ‘쓸 만한 인재’란 사실을 알았다면 산더미 같은 일을 끊임없이 던져주자. 일이 사람을 키운다. 또한 공적을 올려준 간부에게는 경영자와 별 다를 바 없는 연봉을 주는 정도의 넉넉한 인심을 베풀었으면 한다.

 

조직을 만드는 다섯 가지

 

‘현재 가장 유능한 인물’을 발탁하라

노부나가 : 조직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현재 가장 유능한 인물’을 찾아내서 그 자를 책임자로 앉히는 것이네. 그 인선에 있어 신분이나 경력을 일체 고려해서는 아니 될 것이네. 이 점에서 나는 다른 전국다이묘와는 생각이 달랐다네. 나는 아버지 노부히데가 급사하셔서 가독家督을 이었는데, 아버지 대부터의 간부를 그대로 물려받지는 않았네. 어디까지나 내 사고방식에 찬동해주는 인물만을 골라 뜻을 같이하는 이들로 조직을 구성했지.

 

〈에피소드〉프로젝트 팀 체제를 도입하고 ‘현재 가장 유능한 인물’에게 맡긴다

노부나가의 군단은 다른 전국 무장의 군단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그때까지의 전국 무장은 ‘집안[家]’이란 것을 단위로 조직을 이루고 있었다. ‘무장의 밑에 가신이 있고, 그 가신의 밑에 또 가신이 있는 구성’이다. 이런 조직에서 많은 가신을 지니지 못한 자가 해볼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노부나가의 군단은 목적별로 편성된 일종의 프로젝트 팀 체제였다. 그 프로젝트 팀의 우두머리에는 ‘현재 가장 유능한 인물’이 발탁되었다. 미쓰히데나 히데요시 같은 신참들이 물려받은 가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능률을 올린 것은 바로 이 조직 구조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노부나가의 조직은 군단 규모의 확대와 더불어 변화해갔다. 덴쇼 원년에 각지에 ‘방면군(方面軍; 일종의 지방군대)’이 놓이게 되었다. 그 방면군의 사령관 아래에는 노부나가 직속 가신이 배석되었다. 그 직속 가신이란 하급 무사나 유격대의 무장으로, 필요에 응해 방면군의 사령관을 원조하게끔 파견된 것이다. 이와 같은 방면군이라는 조직은 그때까지의 일본에서는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현대 경영으로 치환해보면〉실적주의를 철저히 함으로써 간부의 의식을 바꾼다 어느 회사든지 ‘간부답지 않은 간부’가 있기 마련이다. “옛날엔 이랬다”며 과거에 집착하고 변화를 싫어하며 기업이 개혁을 지향할 때 걸림돌만 된다. 실적주의에 기반을 두어 승격과 강등을 명확히 할 일이다. 나는 간부에 대해 ‘1년 단위의 임명제’를 적용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장이나 부장이라는 직위는 세상에서 말하는 ‘신분’이 아니다. 그건 일을 하기 위해 일정 기간 주어지는 ‘임무’다. 그러므로 결산연도를 기준으로 1년 혹은 2년의 임기로 임명하는 것이다. 간부는 입후보하면서 사장에게 ‘다음 해의 과제와 포부’를 제출하도록 해 매상고나 신규개척, 합리화 방법, 내년의 포부 등을 적게 한다. 직위수당의 액수는 전년도의 업무성과를 평가한 후에 중역회가 1년마다 정하면 그만이다. 즉, 일종의 연봉제인 것이다. 간부사원들은 그런 체제 위에서라면 긴장감을 가지고 일에 전념해줄 것이다.

 

유능한 부하를 발굴해 키우는 다섯 가지

 

라이벌 관계로 두어 공을 다투게 하라

노부나가 : 나는 가신들에게 공을 다투게 만들기도 했지.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네.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하려면 가신끼리 서로 겨루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네. 내가 만들었던 오다군단은 시대와 함께 변천했는데, 내 만년 즈음에선 몇 개인가의 방면군이 있었어. 그리고 방명군의 사령관은 가신 중에 최고의 위치였지. 그 사령관은 서로 공을 다투곤 했고.

수강생 : 지금으로 치자면 중역인 셈이군요.

 

〈에피소드 1〉주고쿠 공략으로 공적을 올렸던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스노마타에 거점으로 성을 쌓는 것에 성공해서 일약 오다가 내의 유력 무장으로 승진했다. 노부나가는 그 논공행상을 행했다. 최고의 공로상을 받은 건 히데요시로, 히데요시의 출세 전설은 그 후로도 계속된다. 덴쇼 5년(1577년)에는 강적 모리씨와 대치하는 주고쿠 방면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노부나가는 공들여 키워왔던 간부 히데요시를 상찬했다.

 

〈에피소드 2〉단바, 단고 평정에 성공한 미쓰히데

노부나가는 덴쇼 3년, 미쓰히데에게 단바와 단고의 평정을 명했다. 동시에 고레토라는 성씨와 휴우가노카미라는 관명을 내렸다. 고작 4년 만에 난제를 달성한 미쓰히데는, 덴쇼 10년에는 긴키 영주에 상당하는 지위까지 올라섰다. 미쓰히데도 노부나가가 직접 공을 들여 키워낸 자랑스러운 간부였다. 하지만 출세가도를 달려왔던 미쓰히데는 그 후 시련에 직면한다. 미쓰히데를 대하는 노부나가의 태도가 급변한 것이다. 원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주고쿠 공략으로 공적을 올린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가신이 되어, 미쓰히데의 그림자는 점점 엷어졌던 듯하다. 히데요시와 미쓰히데는 출세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어릴 적부터 길러온 부하라 할 수 있다. 반면 미쓰히데는 마흔이 넘어서야 오다가의 일원이 되었으니, 지긋한 나이의 중도 채용원이다. 우선 단번에 출세한 건 미쓰히데 쪽이었다. 미쓰히데가 사카모토 성주가 된 것은 겐키 2년(1571년)의 일로, 입사한 지 4년 만에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다이묘가 되었다. 한편 히데요시는 덴쇼 원년(1573년)에 나가하마 성주가 되나 입사후 20년을 거친 뒤였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덴쇼 7, 8년 경에 전全 주고쿠 방면군 사령관의 지위로 올라가자, 그 후 둘의 입장은 역전되어버렸다. 미쓰히데는 노부나가에게 단바국을 빼앗기고 “히데요시의 원조를 위해 출진하라”는 명령까지 받은 것이다. 미쓰히데가 혼노사의 변을 일으킨 것은 이 직후의 일이다.

 

현대 경영으로 치환해보면〉300관문이라는 돈이 모든 이의 의욕을 불렀다

기슈 성 복구 작업 일화는 히데요시 출세담의 첫 장을 장식한 것으로 유명한데, 경영자가 사원을 부리는 데 있어 힌트가 될 만한 점들이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히데요시는 조를 나누어서 어느 조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했으며, 더불어 다른 조의 일을 돕는 것을 금해 경쟁 의욕도 부채질했다. 히데요시는 300관문이라는 커다란 상을 준비하여 동기를 유발시켰다. 300관문이란 돈을 현대의 물가로 계산하면, (1관을 8만 엔으로 쳐서) 2,400만 엔이 된다. 이 포상이 어떻게 분배되었는가 하는 사료는 없지만 아마도 1, 2위가 된 조에게 듬뿍 몰아준 것으로 추측된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란 제일가는 의욕의 원천이란 것엔 변함이 없다. 경영자로서 이 300관문이라는 돈의 비용 대비 효과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기슈 성 담장 수리는 한 달이 걸려도 완성되지 못했던 공사였다. 당시의 인부들 일당이 얼마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기서는 하루 1만 엔이라고 해두자. 한 달(25일 근무 기준) 동안 500명이 25일 동안 일하는 것이니 총 인건비는 1억 2,500만 엔이 된다. 이에 비해 히데요시는 300관문이라는 상(현대의 보너스)을 치르긴 했으나 공사를 사흘만에 완성한 것이니 그 사흘 간의 일당은 ‘500명×3일간×1만 엔=1,500만 엔’으로, 인건비를 절감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일화는 현대 경영에서도 크게 참고가 된다. 요즘은 불경기라고 보너스를 깎는 경향이 있는데, 보너스를 줄이면 사원 전체의 의욕이 떨어지니 일 처리가 늘어지기 쉽다. 그보다도 ‘줄 건 준다’는 자세로 보너스를 지급하는 쪽이 의욕을 불러일으켜 결국엔 인건비를 감소시킬 것이다.

 

 

포상 내리기의 다섯 가지

 

서기가 수훈을 공정하게 기록한다

노부나가 : 대장은 지혜보따리라고 부를 만한 존재를 주위에 두었으면 한다. 전국시대에는 그걸 ‘유히쯔右筆’라고 불렀다. 이 유히쯔는 전장에서 창을 들고 싸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적의 무장과 교섭을 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지. 싸움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이니, 유능한 유히쯔를 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수강생 : 현대풍으로 말하자면 ‘사장실의 참모진’쯤 될까요?

노부나가 : 그런 게지. 유히쯔는 전장에서는 전군에게 지시를 내리는 서기관 역도 겸했다. 전투 상담을 할 때에 나는 정해진 일을 유히쯔에게 기록하게 했다. 또한, 싸움이 끝난 뒤에 부하의 근무 평결을 행하는 중요한 역할도 담당하게 했지. 전투 후에는 누구에게 공이 있었는지를 정하는 논공행상이 열리는데, 그때 기준이 되는 것이 ‘수급첩’이야. 수급첩 기입은 어려운 일이야. 누구나 자신의 공을 인정받고 싶어서 경쟁하곤 하니까 그 판정을 둘러싸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빈번했지.

수강생 : 사원의 근무 평결은 현대의 경영자도 애를 먹고 있습니다.

 

〈에피소드〉어려웠던 유히쯔의 업무 

각자의 공은 유히쯔가 수급첩이라는 노트에 기입했다. ‘첫 수급’이라는 것이 중요시되었는데, ‘본진에 가장 먼저 들고 온 수급’이 아니라 ‘전장에서 가장 먼저 취한 수급’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어느 수급이 가장 먼저였는지를 입증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이를테면 기병인 사무라이와 보병인 사무라이가 목을 치면, 기병인 사무라이 쪽이 수급을 더 빠르게 진영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병 사무라이 쪽이 빨랐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유히쯔는 전투에 직접 참가하진 않으나 그의 일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전국시대의 무사들은 자신의 무용을 유히쯔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갖은 연구를 다했다. 말에 인을 찍거나 특이한 모양의 투구를 쓰기도 했으며, 심지어 갑옷 전체에 방울을 달아 움직일 때마다 짤랑짤랑 소리를 내는 자마저 등장했다. 가문의 인장이 새겨진 깃발은 앞이 아닌 뒤에 붙였다. 무사들은 적보다도 뒤에 있는 아군 쪽을 의식했던 것이다. 이처럼 전국시대의 전투는 무장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PR전투가 되어버리곤 했다.

 

〈현대 경영으로 치환해보면〉공헌도의 공평한 평가가 사원의 의욕을 부른다

전국시대의 싸움은 ‘유히쯔’라는 직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전투에 들어가면 가신들은 모두 뒤를 돌아보며 유히쯔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했다. 아군의 본진에 유히쯔가 제때 도착해서 수첩을 한 손에 들고 공을 기록하지 않으면 돌격할 마음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실은 현대 경영에서도 참고가 될 것이다. 사원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싶으면 공헌도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원의 의욕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필요하다. 첫째, 사장이 직접 현장을 돌며 사원을 격려하고 일하는 모습을 본다. 둘째, 공헌도 평가를 실시하는 부서를 두고 사원의 근무 태도를 항상 기록한다. 셋째, 톱에게 정보가 모이는 구조로 한다. 회사에 대한 공헌도를 재는 요소 중에 ‘정보 제공’을 둔다. 그리고 톱은 정보를 알려준 사원을 평가해야 한다. 그러한 정보가 자연히 톱에게 흘러 들어오는 구조를 구축하는 게 바람직한데 보고, 상담, 연락을 전자메일로 하게 함으로써 일반 사원이 톱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게 만들면 생생한 현장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넷째, ‘줄 건 다 줄 테니 열심히 하게’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원에게 지불할 건 임금, 보너스, 연차․유급 휴가, 퇴직금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특히 중요한 건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다섯째, 조직을 ‘상승 지향의 인간’이 아니면 남아 있지 못하는 분위기로 만든다. 상승 의욕이 흘러 넘치는 직장 풍토를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플러스인 사람들의 어떤 점을 들어 평가를 매기도록 하라.

 

가신에게 내리는 다섯 가지

 

온몸과 정성을 다해 일해라

노부나가 :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가신 전원이 언제나 임전 태세로 있어야만 한다. 전국시대에서 패배란 곧 죽음을 의미하지. 자신뿐만 아니라 일족가신이 말살되고 말아. 점령국의 백성들은 노예로 끌려간다. 그것이 싫다면 먼저 쓰러뜨릴 수밖에 없어. 잠시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야. 해서 나는 특히 간부들에게 엄하게 했다. 간부에게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충성심’, ‘전장에서 죽음을 두려워 않는 용맹한 행동’, ‘정확한 정보 제공’을 요구했으니, 오다군단의 간부들은 다들 숨 돌릴 틈도 없었지.

수강생 : 전국시대엔 휴가라는 말은 물론 없었겠군요. 현대에선 그런 일은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현대에는 근로기준법이 있어서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초과 근무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노부나가 : 위정자란 어느 시대고 부국을 목표로 하기 마련이다. 백성을 열심히 일하게 해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나 같으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을 인용해 ‘일하지 않는 자는 벌을 내린다’로 할 게야. 최근에는 이웃 명나라도 부국강병을 추구하고 있더군. 명나라는 수억 명의 국민들을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게 한다던데, 또 남만南蠻의 나라도 호시탐탐 일본의 부를 노리고 있다고 들었다. 세계는 동란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넋을 놓고있다간 나라를 도둑맞고 말게야.

 

〈에피소드〉가신에게 24시간 일할 것을 요구한 노부나가

히데요시는 열아홉 살 때 노부나가의 밑으로 들어왔다. 첫 임무는 신발 당번이었다. 노부나가는 아무 조짐 없이 갑작스레 마루를 박차고 뛰어나갈 때가 있었다. 그것은 낮뿐만이 아니라,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신발 당번인 자는 언제나 주인의 동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돌연한 외출에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만 했다. 노부나가가 언제 현관으로 뛰어나오더라도 히데요시는 품안에서 덮히고 있던 노부나가의 신을 재빨리 대령했다. 처음에 노부나가는 신발이 미지근한 것을 보고 히데요시를 향해 호통을 쳤다. “너 이놈, 주인의 신발을 깔고 앉아 있었던 게로구나!” 히데요시가 신발을 가슴에 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자, 노부나가가 설마 하는 마음에 히데요시의 품안을 뒤져보니 과연 약간의 흙이 나왔다. “네가 정말 신을 품고 있었구나”라고 노부나가가 감탄하자, 히데요시는 “네, 주인님의 신발은 주인님이나 마찬가지이니, 감기에 걸리면 큰일이라 여겼사옵니다”라고 응수했다. 히데요시가 일하는 방식은 범상치 않았다. 자신을 어필해 관직을 얻자 온 힘을 기울여 주인에게 봉사하고 주인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했다. 노부나가는 가신들에게 연중 쉬지 않고 24시간 내내 일할 것을 요구했다. 가혹한 요구였으나 응해주기만 한다면 보답으로 충분한 상을 내렸다. 그렇기에 상승 욕구를 가진 인재들이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것이다.

 

〈현대 경영으로 치환해보면〉외국인에게 지지 않게 일하자

일본은 경제패전이라고 표현할 만한 상황에 몰려 있는데, 그 패인은 ‘일본인의 근로정신이 저하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는 모두 맹렬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초과노동이 수입되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일본 경제를 부활시키려면 일본인은 그 근면함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인은 세계가 춘추전국시대의 경쟁 관계 속에 있으며, 일본이라는 나라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노부나가의 다섯 가지 실패

 

지나치게 유능한 부하‘만’을 등용했다

노부나가 : 나는 우수한 가신을 모아 노부나가 군단을 이루어냈다. 허나 우수한 자만을 모아 등용한 건 잘못이었어. ‘우수한 자’란 동시에 ‘무서운 자’이기도 하지. 그러니 약간의 틈이라도 보였다간 하극상을 당하고 말아. 긴 안목으로 보자면 조직에 공헌하는 이는 ‘우수한 자’보다도 ‘능력은 중상이나 충실한 자’ 쪽이다. ‘걸출한 능력이 있지만 자기만을 생각하고 조직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자’는 결국 조직을 파괴한다.

 

〈에피소드〉노부나가를 살해한 미쓰히데와 노부나가의 자식을 죽인 히데요시 

마쓰히데와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손수 키워낸 간부였다. 미쓰히데는 혼노사의 변으로 노부나가를 죽였고,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자식을 죽였다. 혼노사의 변에 의해 노부나가와 적남인 노부타다가 죽어버렸다. 기슈 회의에서 죽은 노부타다의 적남인 히데노부가 후계자로 정해졌고, 히데요시가 그 후견인이 되었다. 아직 어린 히데노부 쪽이 히데요시로서는 조종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히데요시는 히데노부를 무릎 위에 앉히면서 인사를 하러 오는 오다가의 가신들에게 답례했다. 차남인 노부카츠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히데요시를 증오한 나머지 이에야스 측에 붙어 히데요시와 맞섰다. 기슈 회의에서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결정된 히데노부는 훗날 기후 성주가 되었지만, 세키가하라 전에서 서군에 가담했기 때문에 고야산으로 추방되어 스물 여섯의 나이로 사망했다. 노부나가의 직속 가계는 이렇게 단절됐다.

 

〈현대 경영으로 치환해보면〉사장에게 만일의 일이 있을 경우를 상정하라

노부나가는 엄청나게 자신감이 넘치던 사람이었던 듯 중요한 일은 전부 스스로 결정했다. 가신에게 의견을 구하는 적도 있었으나 그 의견에 좌우되진 않았다. 말하자면 매사를 톱다운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톱다운 방식은 지휘명령이 빠르므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요즘 급성장을 이루고 있는 회사를 보면 대개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톱다운 방식에도 문제는 있다.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니 주체성 없는 인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때문에 후계자를 키우기 어렵게 된다. 오다가를 보더라도 노부나가의 죽음과 함께 한순간에 붕괴해버렸다. 당연한 일이지만 회사에는 많은 사원이 있다. 사원들은 가족이 있기 마련이니 그들까지 합하면 상당한 인원이다. 사장은 그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킬 의무가 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평소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일도 생각해두는 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