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32 計 공성계(空城計) : 성을 비우는 계략.
아군 측에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공허한 상태를 보여줌으로써 '뭔가 계략을 숨겨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흔히 '없으면서도 있는 척' 하여 적의 오판을 유도하는 반면, '없으면서 더욱 없는 척' 하여 적으로 하여금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방비가 허술할 때는 차라리 무방비한 것처럼 보여라. 그렇게 하면 적은 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적은 대군이고, 이쪽은 아주 적은 병력일 때 이 계략을 쓰면 이쪽 전술을 적이 알지 못하게 된다.
"병력이 적을때는 일부러 더욱 적은 것으로 보여, 의심많은 적을 한층 더 의심케 할 수 있다. 병력이 적을 때의 기책으로 효과를 얻는다. [虛者虛之,疑中生疑,剛柔之際,奇而復奇.]"
1. 제갈량의 공성계
양평관에 주둔하고 있던 제갈량은 위연(魏延)에게 군사를 지휘하여 동쪽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양평관 수비 병력은 불과 1만이었다.
한편 사마의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위연과는 다른 방향에서 양평관을 공략해 왔다. 60리 상거에서 척후를 놓아 정찰케 하였더니, 제갈량은 성안에 있고 수비 병력은 얼마 안된다는 보고였다.
제갈량 쪽에서도 사마의의 대군이 접근해 오고 있음을 알고 위연의 군사와 합류하려 했으나 떠난 지 오래되어 때는 이미 늦었다. 장병들은 모두 대경실색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홀로 태연하게 전군에 명하여 깃발과 장막을 거두고 자기 위치를 떠나지 말고 엄명했다. 이러서 거기에 사방의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깨끗이 청소까지 시켜 놓았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지략에 뛰어남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것은 틀림없이 어딘가에 복병이 있을 것이라 믿고, 군사를 근방에 있는 산속으로 일단 후퇴시켰다.
다음 날 제갈량은 박장대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마의는 나를 아주 주의 깊은 사람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복병이 있는 줄 알고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사마의는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땅을 치며 분통해 했다.
2. 숙첨의 공성계
제(齊)에서는 제환공이치세를 이루고, 晉(진)에서는 진헌공이 다스리고, 남방의 초(楚)에서는 초문왕이 식나라를 쳐서 식후의 부인을 자신의 부인으로 삼아, 그 사이에서 웅간과 웅운, 두 아들이 있던 때였다. 초문왕은 죽고 큰아들 웅간이 왕위에 올랐으나 웅간은 자신보다 재주와 지혜가뛰어난 동생 웅운을 경계하여 틈을 보아 죽이려 하고 있었다. 또한 웅운은 웅운대로 자신보다 재주가 뒤처지는 형이 왕위에 있는 것이 불만이어서,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기회를 노리던 웅운은 사냥터에 나가는 웅간을 습격하여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이가 바로 초성왕(楚成王)이다. 초성왕의 숙부인 자원은 맹랑한 사람이었다. 형인 초문왕이 죽은 후부터 초나라 왕위를 노리고 있었으며, 또한 초문왕이 데려온 형수 문부인(식부인)을 사모하고 있었다. 이에 자원은 문부인의 환심을 사고자 초성왕의 윤허를 받아 정(鄭)나라로 쳐들어갔다.
정나라는 당시 정문공(鄭文公)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즉시 백관을 소집하여 상의했다. 의견은 분분하여 화평론, 주전론, 농성론 등이 계속 오갔다. 이에 숙첨이 말한다.
"세분 말씀이 다 일리가 있으나,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보건데 초군은 머지않아 물러갈 것입니다."
한참 의논하고 있는데 초군이 이미 코앞까지 당도했다는 파발이 들어왔다.
숙첨은 대담무쌍하게 성문을 활짝 열었다. 백성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거리를 왕래하며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초군의 선봉인 투어강은 깜짝 놀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자원을 기다렸다. 보고를 받은 자원이 나아가 살펴보자, 투어강의 보고와는 달리, 성위에는 정기가 정숙하고 무장한 군사들이 숲처럼 늘어서 있었다. 자원이 이를 보고 찬탄한다.
"정나라엔 훌륭한 신하가 세사람 있다더니 그들의 계책은 참으로 측량할 수 없구나. 우선 정나라의 허실부터 탐지한 후에 공격해야겠다."
그러나 다음날, 정나라와 동맹한 제나라에서 구원군이 온다는 첩보가 왔다. 이에 자원은 감히 정성을 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후가 우리의 돌아갈 길을 끊으면 우리는 앞뒤로 적군 속에 들고 만다. 내 이번에 정나라를 쳐서 정성 대로까지 이르렀은 즉,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는 군사들에게 함매를 물리고 말의 방울들을 모두 떼어버리게 한 후, 조용히 퇴각할 것을 명령했다. 그날 밤, 초군은 소리없이 정성을 떠났다. 그들은 정군의 추격을 당할까 두려워 군막도 걷지 않고 많은 기를 꽂아둔 채로 달아났다.
이렇게 정나라의 숙첨의 공성계에 의해 초군은 계략이 있을까 두려워 공격을 유보하고 있었고, 그 동안 원군이 도착할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 공성계는 단독적으로 쓸 수 있는 계략이 아니다. 위의 예에서 본 것처럼 그 후에 다른 계략이 있는 것처럼 보여 적을 망설이게 하는 것이다. 또한 고래로 농성이란 것은 원군을 기다리는 작전이다. 원군도 오지 않는데 농성을 벌인다는 것은 스스로 무덤자리를 파고 들어가 앉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공성계(空城計)
-비어 있는 성을 더욱 비어 있게 하라!
손자병법에서는 전쟁을 속임수라고 정의한다.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전쟁터에서 의리와 명분을 강조하다가는 조직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선 가능한 적을 속이라고 충고한다.
제 3자가 보는 입장에서는 권모술수라고 비난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있는 입장에선 속여야 할 명분이 있는 것이다.
있어도 없는 척하고, 없어도 있는 척하고, 없는데 더 없는 척하는 모든 기본 속임수가 전쟁에선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현장과 내용만 틀릴 뿐이지 현대사회 기업 간의 전쟁에서도 상대방에게 나의 실체를 숨겨서 그릇된 판단을 유도하는 속임수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생존전략이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생존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본능을 충족하기 위해선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다양한 트릭을 구사한다.
다만 생존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상대방을 속이는 이런 병법을 비난할 것이다.
병법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전술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없는데 더 없는 것처럼 하여 상대방을 속이는 전술을 공성계(空城計)라고 한다.병력과 물자가 텅 비어 있는 성을 더욱 빈 것처럼 하라는 공성계는 불리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일종의 심리전술이다. 자신이 성을 지킬 능력이 없는 불리한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비어있는 성을 과장되게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의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른바
‘비었으면 더욱 비어 있는 것처럼 하라(虛者虛之)!
상대방이 의심 속에 의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疑中生疑)!’라는 논리다.
없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하는 것도 속이는 것이지만 없는 사람이 일부러 더욱 없는 것처럼 하여 상대방의 오판을 유도하는 것도 속이는 일이다.
어떤 회사가 자금이 부족하여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는데 그 회사를 노리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기업이 있다면 세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첫째는 무조건 항복하여 화의를 청하고 직원들을 살리는 일이고,
둘째는 외부의 지원을 어떻게든 받아 힘을 키워 대항하는 것이고,
셋째는 죽기를 각오하고 결사항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 선택하기엔 쉽지 않은 방법이고 특히 세 번째 죽기를 각오하는 결사항전의 전술은 수많은 직원들의 희생이 뒤따르기 때문에 병법에선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전술이다.
이럴 때 도박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공성계다. 이미 부족한 자금을 더욱 부족하다고 과장되게 표현하여 상대방의 잘못된 판단을 유도해 내는 것이다.
공성계는 삼국지에 제갈량이 사용한 전술로 잘 알려져 있다.
제갈량의 심복인 마속의 실수로 궁지에 몰리게 된 촉나라 군대는 2천 5백 명의 군대로 서성(西城)에서 근근히 버티고 있었다.
기세가 등등한 사마의의 군대는 15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서성까지 진격해 왔고, 어떤 면으로 보나 서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완전히 포위 당한 제갈량은 어떤 방법으로든 빠져나갈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 공성계를 사용하였다.
그는 우선 성문을 열고 백성들에게 빗자루로 청소하라고 지시하고 자신은 성 위로 올라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것을 본 사마의는 제갈량이 분명 어떤 계략을 꾸며놓고 자신을 속이기 위해 성문을 열어 놓았다고 의심하였고 결국 승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후퇴를 명령하였다.
제갈량의 ‘비었으면 더욱 비어있는 것처럼 하라!’는 도박에 가까운 공성계가 성공한 것이다.
이 전술이 성공하려면 상대방의 성격과 심리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제갈량은 사마의가 매사에 의심 많고 조심스런 성격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만약 상대방이 과감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사람인데 공성계를 사용하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전술은 상위의 병법인 허허실실(虛虛實實)의 전술의 일종이다. 상대방에게 나의 허를 실로 보이게 하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실을 허로 보게 할 수 있는 허허실실의 전술은 조직의 생존을 위해 병법에서 상사(常事)로 사용하는 전술이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상대방에게 투명한 유리처럼 보여주는 사람은 훌륭하다. 그러나 자신의 그 고고함을 지키기 위해 자신만을 믿고 따른 조직원을 희생시키는 리더라면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비난받아 마땅할 장군에 속한다.
생존. 결코 녹녹치 않은 명제다.
공성계.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사용한 것으로 유명해진 계략일 것이다(하지만 뻥이다...- -;). 아군측에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공허한 상태를 보여줌으로써 '뭔가 계략을 숨겨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흔히 '없으면서도 있는척' 하여 적의 오판을 유도하는 반면, '없으면서 더욱 없는척' 하여 적으로 하여금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병력이 적을때는 일부러 더욱 적은 것으로 보여, 의심많은 적을 한층 더 의심케 할 수 있다. 병력이 적을 때의 기책으로 효과를 얻는다.[虛者虛之,疑中生疑,剛柔之際,奇而復奇.]"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의 계책으로 유명한 공성계. 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의 공성계는 나관중의 허구일 뿐이다. 실제 공성계가 역사에 등장한 것은 수차례 정도 된다. 성공한 기록도 있고, 실패한 기록도 있다. 列國志에 등장하는 공성계에 대해서 한 번 보도록 하자.
때는 齊(제)에서는 제환공이 치세를 이루고, 晉(진)에서는 진헌공이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남방의 楚(초)에서는 초문왕이 식나라를 쳐서 식후의 부인을 자신의 부인으로 삼아, 그 사이에서 웅간과 웅운, 두 아들이 있던 때였다. 초문왕은 죽고 큰아들 웅간이 왕위에 올랐으나 웅간은 자신보다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동생 웅운을 경계하여 틈을 보아 죽이려 하고 있었다. 또한 웅운은 웅운대로 자신보다 재주가 뒤처지는 형이 왕위에 있는 것이 불만이어서,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기회를 노리던 웅운은 사냥터에 나가는 웅간을 습격하여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이가 바로 楚成王(초성왕)이다. 초성왕의 숙부인 자원은 맹랑한 사람이었다. 형인 초문왕이 죽은 후부터 초나라 왕위를 노리고 있었으며, 또한 초문왕이 데려온 형수 문부인(식부인)을 사모하고 있었다. 이에 자원은 문부인의 환심을 사고자 초성왕의 윤허를 받아 鄭(정)나라로 쳐들어갔다.
정나라는 당시 鄭文公(정문공)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즉시 백관을 소집하여 상의했다. 의견은 분분하여 화평론, 주전론, 농성론 등이 계속 오갔다. 이에 숙첨이 말한다.
"세분 말씀이 다 일리가 있으나,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보건데 초군은 머지않아 물러갈 것입니다."
한참 의논하고 있는데 초군이 이미 코앞까지 당도했다는 파발이 들어왔다.
이에 숙첨은 대담무쌍하게 성문을 활짝 열었다. 백성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거리를 왕래하며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에 초군의 선봉인 투어강은 깜짝 놀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자원을 기다렸다. 보고를 받은 자원이 나아가 살펴보자, 투어강의 보고와는 달리, 성위에는 정기가 정숙하고 무장한 군사들이 숲처럼 늘어서 있었다. 자원이 이를 보고 찬탄한다.
"정나라엔 훌륭한 신하가 세사람 있다더니 그들의 계책은 참으로 측량할 수 없구나. 우선 정나라의 허실부터 탐지한 후에 공격해야겠다."
그러나 다음날, 정나라와 동맹한 제나라에서 구원군이 온다는 첩보가 왔다. 이에 자원은 감히 정성을 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후가 우리의 돌아갈 길을 끊으면 우리는 앞뒤로 적군 속에 들고 만다. 내 이번에 정나라를 쳐서 정성 대로까지 이르렀은 즉,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는 군사들에게 함매를 물리고 말의 방울들을 모두 떼어버리게 한 후, 조용히 퇴각할 것을 명령했다. 그날 밤, 초군은 소리없이 정성을 떠났다. 그들은 정군의 추격을 당할까 두려워 군막도 걷지 않고 많은 기를 꽂아둔 채로 달아났다.
이렇게 정나라의 숙첨의 공성계에 의해 초군은 계략이 있을까 두려워 공격을 유보하고 있었고, 그 동안 원군이 도착할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의 공성계는 너무나 어이가 없을 정도의 허망한(...) 계략이다. 어차피 나관중이 지어낸 허구이니 별로 심각하게 생각할 것도 없지만...실제 공성계는 단독적으로 쓸 수 있는 계략이 아닌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본 것처럼 그 후에 다른 계략이 있는 것처럼 보여 적을 망설이게 하는 것이다. 또한 고래로 농성이란 것은 원군을 기다리는 작전이다. 원군도 오지 않는데 농성을 벌인다는 것은 스스로 무덤자리를 파고 들어가 앉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단지 제갈량이 뭔가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만 했는데도 사마의가 지레 겁먹고 도망쳤다는...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묘사를 해두고 있다. 어차피 삼국지연의에서의 제갈량은 뭐, 인간이 아니니까...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