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26 計 가치부전(假痴不癲) : 어리석은 척 하되 미치지는 마라.
"일부러 어리석거나 딴전을 부리는 편이, 아는 척하거나 경거망동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조용히 계략을 가다듬고 실력을 기른다. 이는 우레가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寧僞作不知不僞,不僞作假知妄僞;靜不露機,雲雷屯也.]"
못난 소처럼 행동한다. 어리석은 체하면서도 미치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여기서 어리석은 체한다 함은 귀머거리나 벙어리 흉내를 내거나 모른 체하는 것을 말한다.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공연히 동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전체적인 의미는, 바보짓을 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은 매우 냉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우둔한 체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좋고 총명한 척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침착한 행동으로 조금이라도 기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흡사 겨울 뇌운(雷雲)이 힘을 길러 때를 기다리고 있듯이.
어리석은 행동으로 상대를 안심시켜라
우두커니 알지도 행동으로 옮기지도 못하는 척할 수 있다. 아는 척하거나 경거망동해서는 안된다. 둔괘의 괘상에서 암시한 대로 역경이 불어 닥치면 자신의 뜻을 밖으로 나타내지 말고 암암리에 계획하고 운영해 나가야 한다.
'손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슬기롭게 싸워서 승리를 거두는 자는 그 지모로 이름을 얻으려 하지 않으며, 또 그 용맹으로써 공로를 내세우려 하지 않는 법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 중에 가장 힘든 것이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바보인척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중국 지식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중국어로는 난득호도(難得糊塗)라고 하는데 ‘바보(糊塗)인척 하기는 정말 어려운(難))일이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원래 청(淸)나라에 문학가 중 8대 괴인(怪人)으로 알려진 정판교(鄭板橋)라는 사람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이면 화를 당할 것이기에 그저 바보인척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정판교의 인생철학이 담겨있는 메시지다.
중국인들은 왜 똑똑한 자신의 능력을 왜 감추려 하는 것일까?
왜 바보 같은 사람인양 꾸미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사는 중요한 처세 방법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자신의 본 모습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고도의 위장술일 수도 있고, 상대방을 안심시켜 좀 더 강한 공격의 효과를 기대하는 전술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아무런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이는 사람은 이런 면에서 보면 고수(高手)가 아니다. 비록 순진함과 솔직함이 아름답다고 해도 ‘바보’의 인생철학에서 보면 하수(下手)들의 사는 방법인 이다.
가치부전(假痴不癲)이란 병법도 이와 유사한 생각을 담고 있다. 가(假)는 ‘가장하다’라는 뜻이고 치(痴)는 ‘어리석다’, 전(癲)은 ‘미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나를 어리석게 보이게는 하되, 그것이 오버해서 미친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나의 능력을 상대방에게 보이지는 않게 해야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상대방에게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된다는 뜻이다.
손자병법에도 자신의 모습과 의도를 상대방에게 보이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상대방의 의도와 모습은 밖으로 드러나게 하고, 나의 의도나 모습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한다(形人而我無形).’
상대방의 의도는 거울을 보듯이 빤히 알고 있고 나의 의도는 상대방이 전혀 모를 때 나의 힘은 적보다 압도적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의도와 실체를 적에게 노출시키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병법에서 말하는 시형법(示形法)이다.
시형법이란 상대방에게 내 모습을 자유자재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나를 상대방에게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고 바보 같은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내 의도대로 내 모습을 감출 수 있어야 한다.
‘매가 먹이를 채려고 할 때는 날개를 움츠리며 나직이 날고, 맹수가 다른 짐승을 노릴 때는 귀를 세워 엎드리고, 현명한 사람이 움직이려고 할 때는 어리석은 듯한 얼굴빛을 한다.’
병법서 육도(六韜)에 나오는 이야기다. 결정적인 찬스를 잡기 위해서는 의도를 겉으로 보이지 않아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진정 똑똑한 사람은 상대방이 볼 때는 어리석은 사람 같다(大智若愚).’ 노자에서 강조하는 처세술이다.
때로는 똑똑하다고 해서 다 보여서는 안 될 때가 있다. 아무런 상황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를 상대방에게 모두 보여준다면 결국 큰 화를 당할 수 있다는 충고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은 생존을 위해서 때로는 바보처럼 보여 상대방의 허(虛)를 찾아야 필요도 있다. 때로는 알고도 모르는 것처럼 하여 상대방을 안심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여 안심시키되, 지나쳐서 미친 척 하여 의심을 불러 일으켜서는 안 될 것이다.’ 가치부전(假痴不癲)의 병법은 고수들의 생존게임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 할 고도의 이성적 판단이다.
1.
어느 날 왕과 대신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 때 국경 부근에서 적의 횃불이 오르고 적이 내습해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왕은 당황하여 바둑돌을 내던지고 중신들을 소집하려고 했다. 그러자 대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왕을 제지하였다.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그 횃불은 이웃 나라 왕이 사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은 말하면서 바둑을 계속했다.
왕은 반신반의하면서 다시 바둑을 두기 시작했으나 마음이 불안하여 안절부절 못했다.
한참 후에 국경에서 전령(傳令)이 달려와, 적이 기습한 것이 아니고 실은 이웃 나라 왕이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을 잘못 보고했다고 알려 왔다.
왕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그대는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었소?".
대신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이웃 나라에도 정보망을 가지고 있어서, 오늘 그 나라의 왕이 사냥을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감탄하기를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 후 왕은 그 대신을 경계하여 결국 조정에서 내치고 말았다.
이 고사에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한 가지는 그 대신이 적국의 사정에 대한 얘기를 구태여 할 필요 없이 그것이 우연의 일치처럼 꾸몄으면 어리석은 왕의 경계심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또 하나는 능수능란한 대신을 잘 다룰 능력이 없는 무능한 왕이 유능한 신하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2. 삼국지연의
당시 유비는 조조와 함께 여포를 치고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던 와중에 동승을 중심으로 하는 조조토벌 모의에 가담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후원으로 나가 채소를 심고 손수 물을 주며 가꾸었다. 관우와 장비가 이에 한탄한다.
"형님께서는 천하대사는 생각지 않으시고 小人들의 일이나 배워 무엇 하시려는 것이옵니까?"
"그것은 너희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관우와 장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가 현덕을 불렀다. 현덕이 상부로 올라가 조조를 뵙자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집에서 큰일을 하고 계신다지요?"
현덕은 크게 놀라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동승과의 모의가 들킨 것은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조조가 현덕의 손을 잡고 후원으로 나오며 말했다.
"채마밭을 가꾸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닐 테지요."
현덕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것뿐이옵니다."
조조는 매실이 잘 익어 현덕과 한 잔 하고 싶어 불렀다며, 정자로 안내했다. 한 동이 술을 데워 두 사람이 마주앉아 유쾌하게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오를 때였다.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들며 곧 소나기라도 내릴 기세였다. 저 멀리 龍掛(용괘)가 생겨났다. 조조가 말했다.
"사군은 龍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시오?"
"잘 모르옵니다."
"용은 제 몸을 크게 할 수도 있고, 작게 할 수도 있으며,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고, 숨어들 수도 있다고 하오. 커지면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하지만, 작아지면 비늘도 감추고 형태조차 나타나지 않으며, 올라가면 우주 속을 날아다니지만 숨어들면 파도 속에 엎드려 때를 기다린다고 하는데, 지금은 바야흐로 깊은 봄이라 용이 변하고 있는 중이오. 사람도 뜻을 이루면 천하를 주름잡으니, 세상의 영웅들도 용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오. 현덕은 오랫동안 사방을 편력하였으니 지금 세상의 영웅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실 게요. 누구누구인지 어디 한 번 말씀해 보시오."
이에 유비는 원술, 원소, 유표, 손책, 유장, 장수, 장로, 한수 등의 이름을 차례로 언급하나 조조는 이를 일축한다.
"대저 영웅이란 가슴에 큰 뜻을 품고, 뱃속에 좋은 계책이 있으며, 우주의 기미를 싸 감추고, 천지의 뜻을 삼키거나 뱉는 사람이오."
"누가 그런 사람이옵니까?"
"지금 천하의 영웅은 사군과 이 조조뿐이외다."
현덕은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때 마친 비가 쏟아지며 천둥소리가 크게 일었다. 현덕은 젓가락을 주우며 말했다.
"웬 천둥이 이리 대단하담."
"장부도 천둥을 무서워하시오?”
"공자께서도 '빠른 천둥과 맹렬한 바람이 일면 반드시 안색이 변하셨다' 했는데 어찌 무섭지 않겠사옵니까?"
현덕은 조조의 말에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린 일을 가볍게 얼버무려 넘겼다. 조조는 현덕의 그릇이 작은 것을 알고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 관우와 장비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유비가 조조에게 불려갔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다.
이내 술자리가 파하고, 유비 일행은 관사로 돌아왔다. 현덕은 관우와 장비에게 젓가락 떨어뜨린 일을 얘기해 주었다. 관우가 물었다.
"무슨 뜻이옵니까?"
"내가 채소를 가꾼 것은, 조조가 나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 큰뜻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믿게 하려는 속셈이었는데, 뜻밖에 조조가 나를 영웅이라고 하는 바람에 크게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린 것이다. 또한 다시 조조의 의심을 살까봐 천둥을 핑계로 얼버무렸던 것이다."
관우와 장비가 말했다.
"형님은 참으로 내다보시는 눈이 높사옵니다."
여기에서 유비는 두 번의 '가치부전'을 행한다. 먼저, 채소를 가꾸며 자신에게 웅지가 없음을 가장한 것이요, 둘째 자신의 속내를 들킨듯 하자 천둥을 핑계삼아 담이 작은 사내로 보이게 한 것이다.
3. 기타
방연의 시기에 대해 손빈이 미친 척을 해서 제나라로 갔고, 패왕 항우 앞에서 유방이 어리석은 체하다가 뒤통수를 쳤으며, 조조의 서슬 퍼런 태도 앞에서 유비가 어리석은 체하여 조조에게서 도망쳤다. 또한 우리역사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정적들의 경계를 풀기 위해 어리석은 짓을 하고 다니기도 하였다.
삼국 시대, 사마의(司馬懿)는 노쇠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위장 함으로써 정적(政敵)인 조상(曹爽)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마침내는 그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가치부전(假痴不癲)
- 어리석은 척 하되 미치지는 마라!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 중에 가장 힘든 것이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바보인척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중국 지식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중국어로는 난득호도(難得糊塗)라고 하는데 ‘바보(糊塗)인척 하기는 정말 어려운(難))일이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원래 청(淸)나라에 문학가 중 8대 괴인(怪人)으로 알려진 정판교(鄭板橋)라는 사람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이면 화를 당할 것이기에 그저 바보인척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정판교의 인생철학이 담겨있는 메시지다.
중국인들은 왜 똑똑한 자신의 능력을 왜 감추려 하는 것일까?
왜 바보 같은 사람인양 꾸미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사는 중요한 처세 방법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자신의 본 모습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고도의 위장술일 수도 있고, 상대방을 안심시켜 좀 더 강한 공격의 효과를 기대하는 전술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아무런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이는 사람은 이런 면에서 보면 고수(高手)가 아니다. 비록 순진함과 솔직함이 아름답다고 해도 ‘바보’의 인생철학에서 보면 하수(下手)들의 사는 방법인 이다.
가치부전(假痴不癲)이란 병법도 이와 유사한 생각을 담고 있다. 가(假)는 ‘가장하다’라는 뜻이고 치(痴)는 ‘어리석다’, 전(癲)은 ‘미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나를 어리석게 보이게는 하되, 그것이 오버해서 미친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나의 능력을 상대방에게 보이지는 않게 해야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상대방에게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된다는 뜻이다.
손자병법에도 자신의 모습과 의도를 상대방에게 보이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상대방의 의도와 모습은 밖으로 드러나게 하고, 나의 의도나 모습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한다(形人而我無形).’
상대방의 의도는 거울을 보듯이 빤히 알고 있고 나의 의도는 상대방이 전혀 모를 때 나의 힘은 적보다 압도적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의도와 실체를 적에게 노출시키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병법에서 말하는 시형법(示形法)이다.
시형법이란 상대방에게 내 모습을 자유자재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나를 상대방에게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고 바보 같은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내 의도대로 내 모습을 감출 수 있어야 한다.
‘매가 먹이를 채려고 할 때는 날개를 움츠리며 나직이 날고, 맹수가 다른 짐승을 노릴 때는 귀를 세워 엎드리고, 현명한 사람이 움직이려고 할 때는 어리석은 듯한 얼굴빛을 한다.’
병법서 육도(六韜)에 나오는 이야기다. 결정적인 찬스를 잡기 위해서는 의도를 겉으로 보이지 않아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진정 똑똑한 사람은 상대방이 볼 때는 어리석은 사람 같다(大智若愚).’ 노자에서 강조하는 처세술이다.
때로는 안다고 다 말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
때로는 똑똑하다고 해서 다 보여서는 안 될 때가 있다. 아무런 상황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를 상대방에게 모두 보여준다면 결국 큰 화를 당할 수 있다는 충고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은 생존을 위해서 때로는 바보처럼 보여 상대방의 허(虛)를 찾아야 필요도 있다. 때로는 알고도 모르는 것처럼 하여 상대방을 안심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여 안심시키되, 지나쳐서 미친척 하여 의심을 불러 일으켜서는 안 될 것이다.’ 가치부전(假痴不癲)의 병법은 고수들의 생존게임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할 고도의 이성적 판단이다.
어리석은 척하되 미친 것은 아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재능이나 식견을 감추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계략이다. 이도 역사를 둘러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계략 중 하나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일부러 어리석거나 딴전을 부리는 편이, 아는 척하거나 경거망동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조용히 계략을 가다듬고 실력을 기른다. 이는 우레가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寧僞作不知不僞,不僞作假知妄僞;靜不露機,雲雷屯也.]"
이에 대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방연의 시기에 대해 손빈이 미친척을 해서 제나라로 갔고, 패왕 항우 앞에서 유방이 어리석은 체하다가 뒤통수를 쳤으며, 조조의 서슬퍼런 태도 앞에서 유비가 어리석은 체하여 조조에게서 도망쳤다. 또한 우리역사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정적들의 경계를 풀기 위해 어리석은 짓을 하고 다니기도 하였다.
흔히 많이 알려진 三國志演義의 예를 보기로 하자. 삼국지연의 제21회 '靑梅煮酒(청매자주)'에 소개되는 유비의 이야기이다.
당시 유비는 조조와 함께 여포를 치고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던 와중에 동승을 중심으로 하는 조조토벌 모의에 가담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후원으로 나가 채소를 심고 손수 물을 주며 가꾸었다. 관우와 장비가 이에 한탄한다.
"형님께서는 천하대사는 생각지 않으시고 小人들의 일이나 배워 무엇하시려는 것이옵니까?"
"그것은 너희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관우와 장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조조가 현덕을 불렀다. 현덕이 상부로 올라가 조조를 뵙자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집에서 큰일을 하고 계신다지요?"
현덕은 크게 놀라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동승과의 모의가 들킨 것은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조조가 현덕의 손을 잡고 후원으로 나오며 말했다.
"채마밭을 가꾸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닐테지요."
현덕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것뿐이옵니다."
조조는 매실이 잘 익어 현덕과 한 잔 하고 싶어 불렀다며, 정자로 안내했다. 한 동이 술을 데워 두 사람이 마주앉아 유쾌하게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오를 때였다.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들며 곧 소나기라도 내릴 기세였다. 저 멀리 龍掛(용괘)가 생겨났다. 조조가 말했다.
"사군은 龍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시오?"
"잘 모르옵니다."
"용은 제 몸을 크게 할수도 있고, 작게 할수도 있으며,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고, 숨어들 수도 있다고 하오. 커지면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하지만, 작아지면 비늘도 감추고 형태조차 나타나지 않으며, 올라가면 우주 속을 날아다니지만 숨어들면 파도 속에 엎드려 때를 기다린다고 하는데, 지금은 바야흐로 깊은 봄이라 용이 변하고 있는 중이오. 사람도 뜻을 이루면 천하를 주름잡으니, 세상의 영웅들도 용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오. 현덕은 오랫동안 사방을 편력하였으니 지금 세상의 영웅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실게요. 누구누구인지 어디 한 번 말씀해 보시오."
이에 유비는 원술, 원소, 유표, 손책, 유장, 장수, 장로, 한수 등의 이름을 차례로 언급하나 조조는 이를 일축한다.
"대저 영웅이란 가슴에 큰 뜻을 품고, 뱃속에 좋은 계책이 있으며, 우주의 기미를 싸 감추고, 천지의 뜻을 삼키거나 뱉는 사람이오."
"누가 그런 사람이옵니까?"
"지금 천하의 영웅은 사군(당신)과 이 조조 뿐이외다."
현덕은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때 마친 비가 쏟아지며 천둥소리가 크게 일었다. 현덕은 젓가락을 주우며 말했다.
"웬 천둥이 이리 대단하담."
"장부도 천둥을 무서워 하시오?"
"공자께서도 '빠른 천둥과 맹렬한 바람이 일면 반드시 안색이 변하셨다' 했는데 어찌 무섭지 않겠사옵니까?"
현덕은 조조의 말에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린 일을 가볍게 얼버무려 넘겼다.조조는 현덕의 그릇이 작은 것을 알고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 관우와 장비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유비가 조조에게 불려갔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다.
이내 술자리가 파하고, 유비 일행은 관사로 돌아왔다. 현덕은 관우와 장비에게 젓가락 떨어뜨린 일을 얘기해 주었다. 관우가 물었다.
"무슨 뜻이옵니까?"
"내가 채소를 가꾼 것은, 조조가 나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 큰뜻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믿게 하려는 속셈이었는데, 뜻밖에 조조가 나를 영웅이라고 하는 바람에 크게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린 것이다. 또한 다시 조조의 의심을 살까봐 천둥을 핑계로 얼버무렸던 것이다."
관우와 장비가 말했다.
"형님은 참으로 내다보시는 눈이 높사옵니다."
여기에서 유비는 두 번의 '가치부전'을 행한다. 먼저, 채소를 가꾸며 자신에게 웅지가 없음을 가장한 것이요, 둘째 자신의 속내를 들킨듯 하자 천둥을 핑계삼아 담이 작은 사내로 보이게 한 것이다.
*. '가치부전'의 의미에 대한 해석에 '어리석은 척하되 미친척하지 말라'고 되어있는 자료도 있으나, '가치부전'의 본질상, 어리석은 척하거나 미친척하거나 상대방의 경계를 푸는 점에서 별반 차이는 없는 것으로 생각되므로 위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가치부전(假痴不癲)이란? 병법36계(三十六計)의 제27계의 계략으로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어리석은 척하되 미친 척하지 말라’ - 무지한 척 가장하되 무슨 행동을 하지 말라. 총명한 척하며 경거망동하지 말라. 기밀을 누설하지 말고 조용히 계획하라. 천둥번개가 순식간에 치는 것처럼 행실에 옮겨라. 가치부전(假痴不癲)의 계는 손자병법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손자(孫子)에 "병은 궤도(詭道:속임수)"라는 말이 있다.
서기 239년, 위(魏)나라 명제(조예 明帝)는 병이 위급해지자 태자 조방(曹芳)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조정은 사마의(司馬懿)와 조상(曹爽)이 공동으로 집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조상의 곁에는 얕은 재주꾼들이 몰려들어 술수를 부리기 시작했다. 조상은 문객 정밀(丁謐)의 계략을 받아들여 대권을 독점하고 있었다. 위압감을 느낀 사마의는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고 아들 사마소(司馬師)와 사마사(司馬昭)도 관직을 사퇴하고 물러나 혐의를 피하도록 했다.
이에 조상은 사마의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서기 248년 겨울, 형주(形州)자사에 임명하여 부임하게 되는 이승(李勝)으로 하여금 사마의의 동정을 살피도록 했다.
조상이 이승에게 당부했다.
“너는 사마의의 집에 작별인사를 하러 가서 그의 동정을 �펴보거라.”
이승이 사마의의 집에 당도하여 어린 종자의 안내를 받아 사마의가 누운 방에 들어가 사마의의 형세를 살피니 그 꼴이 정말로 병자와 같았다.
‘사마의는 이승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자 즉시 머리를 풀어헤치고 이불을 덮은 체 누었다.’ ‘사마의는 목이 마르다는 시늉을 했다.’ ‘사마의는 일부러 옷깃에 죽을 흘렸다.’
너무 처참한 사마의의 모습을 보자 이승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대감의 지병이 재발했다는 소문은 들었소이만, 이 지경일줄이야...”
“듣자하니 자네는 병주로 발령이 났다하던데, 병주는 오랑캐와 가까우니 잘 수비하게. 나는 목숨이 다한 듯하니 아마 다시 보지 못할 걸세. 조상 대장군께 앞으로 내 아들 좀 잘 돌봐주시라고 전해주게나.” 사마의는 일부러 모르는 체 형주로 발령이 난 이승을 병주로 발령이 났다고 말하였다.
“병주가 아니라 형주입니다.” 이승이 대꾸하였다.
“글세 병주에 도착하거든~~~” 사마의는 다시 귀가 어두운 체 하였다.
“형주라니까요......”
“늙으니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자네가 무어라 말하는지 못 알아듣겠네. 내 곧 죽을 것 같으니, 부디 내 두 자식놈들을 잘 부탁하네.”
이승은 이러한 사마의가 정발로 노병이 들었다고 판단하고 조상에게 돌아가 말했다.
“사마의의 목숨은 경각에 달렸습니다. 벌써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염려할 것 없습니다.”
조상은 사마의를 더 이상 경계하지 않게 되었다.
“사마의는 곧 병사할테니 아무런 걱정이 없군.”
조상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사마의는 서기 249년 2월 5일, 자신의 두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와 함께 조상이 마음을 놓은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켜 2월 9일, ‘반역’죄로 조상과 그 일당을 일망타진하여 동시(東市)로 끌고 가 처형했다.
병법에 능한 사마의는 병법36계 ‘가치부전(假痴不癲)의 계’로 자신과 자신의 아들의 목숨을 살렸으며, 자신의 숙적 조상을 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