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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23 計 원교근공(遠交近攻)

흐르는 물3 2007. 12. 31. 10:06
 



23 計 원교근공(遠交近攻) :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다.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정책. 지형상의 제약을 받을 때에는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며, 먼데 있는 적을 공격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경우가 흔히 있다.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밑으로 흐른다. 같은 적이라도 대책은 달리해야 한다.


 "혼란 중에 지리적 제약까지 있을 경우, 가까운 것부터 손에 넣는 것이 좋다. 멀리 있는 것부터 치면 해로울 뿐이다. 이념이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도 지리적 조건을 중요시해야 한다.[形禁勢格,利從近取,害以遠隔.上火下澤.]"


1. 史記 范雎列傳

BC 270년 중국의 전국시대에 위(魏)의 범저(范睢)가 진(秦)의 소양왕(昭襄王:재위 BC 306∼BC 251)에게 진언한 것에서 유래한다. 《전국책(戰國策)》이나 《사기(史記)》에 의하면 범저는 가까운 나라를 그대로 두고 먼 나라를 공격하는 진의 대외정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려우므로 반대로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소양왕은 이 말을 받아들여 제(齊)·연(燕)·초(楚)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한(韓)·위·조(趙)의 3국을 공격하였다.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인 범저(范雎)는 제(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진(秦)나라의 사신 왕계(王稽)를 따라 함양(咸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진나라는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고 자국(自國)의 정사를 혹평한 범저를 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범저는 소양왕에게 자신의 장기인 변설(辯舌)을 펼쳐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소양왕 36년(B.C. 271), 드디어 범저에게 때가 왔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나라를 공략하여 자신의 영지인 도(陶)의 땅을 확장하려 했다.

이 사실을 안 범저는 왕계를 통해 소양왕을 알현하고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신이 듣건대 지금 승상 양후 위염이 한나라와 손을 잡고 위나라 건너편에 있는 제나라를 칠 것이라고 하니 그것부터가 잘못입니다. 제나라는 진나라와 너무 먼 거리에 있습니다. 더구나 그 사이엔 한나라와 위나라가 있습니다. 약간의 군사를 보내보았자 제나라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많은 군사를 보냈다가는 진나라만 손해를 입게 됩니다


가능한 한 진나라의 병력을 아끼고 한 위 두 나라의 병력을 동원코자 하시는 것이 전하의 의도인 듯하오나 동맹국을 신용할 수 없는 이 마당에 타국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에 위나라가 조나라 건너편에 있는 중산국을 쳐서 그 땅을 차지하긴 했으나 결국엔 조나라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산국은 지리적으로 조나라와 가깝고, 위나라와 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왕께서 제나라를 쳤다가 이기지 못하면 망신만 당합니다. 설령 이긴다 하더라도 결국 한나라와 위나라만 이익을 보게 됩니다.그런 바에야 진나라에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또한 제나라의 '민왕'이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초(楚)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離反)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이온데, 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借賊兵(차적병)]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 준 꼴[齎盜糧(재도량)]'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전하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 상책(上策)인 줄 아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寸土)이옵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尺地)가 아니옵니까? 누에가 뽕잎을 먹어들어가듯 가까운 나라부터 쳐서 점점 먼 나라까지 이른다면 천하를 얻기에 무슨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賢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신은 대왕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계책을 주장합니다. 대왕께선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부터 치십시오. 곧 먼 나라와 친교를 맺음으로써 그들을 이간시키는 동시에 가까운 나라를 쳐서 영토부터 넓혀야 합니다. "


이에 진소양왕이 묻는다.

"그럼 먼나라와 친교하고 가까운 나라부터 치려면 어떻게 해야 좋겠소?"

"진나라가 친교해야할 먼 나라는 바로 제나라와 초나라입니다. 그리고 먼저 공격해야 할 가까운 나라는 한나라와 위나라입니다. 대왕께서 한나라와 위나라를 정복해서 손아귀에 넣기만 하면, 제나라와 초나라가 어찌 혼자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


이 날을 계기로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저는 객경이 되었다가 진나라의 승상 자리에 앉게 된다.응후 (應侯)에 봉해졌고, 그의 지론인 원교근공책은 천하 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國是)가 되었다.



이후 범저는. 그리고 진나라는 범저의 원교근공 전략에, 후에 상앙의 부국강병책 등으로 중원에서 제일 강한 나라가 되고, 결국엔 열국이 난립하던 중국을 하나로 통일하기에 이른다.


이 원교근공은 '보편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가까이 있는 '敵'을 쳐서 없애야만 할 때 사용하는 전략이지, 평상시에 사용할 전략은 아닌 것이다. 이는 秦나라가 중국을 모두 차지할 생각이 있었기에 사용했고, 또한 유효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정치의 세계는 사방이 적이다, 먼곳의 적에게 미소를 보내고 가까운 곳에서는 비수를 들이댄다.


원문에 보면 '군사적인 목표가 지형상의 제약하에 놓여 있을 때는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며 먼곳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리하다."고 되어 있다.

이런 이치처럼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혼란한 상황에서는 서로가 이합집산과 권모술수를 총동원하여 각자 최대한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


이런 때일수록 먼 곳에 있는 적은 공격하지 말고 친교를 맺어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적은 멀리 있는 적과 달리 친교를 맺어서는 안된다. 자칫 가까이 하게 되면 자신의 심장부에서 변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의 세계에서는 정치의 뜻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친형제 사이라 할지라도 적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정치에 뜻을 두고 있지 않은 이웃이나 낯선 사람이 가까이 할 만한 상대라고 할 수 있다.








▶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정책. 지형상의 제약을 받을 때에는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며, 먼데 있는 적을 공격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경우가 흔히 있다.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밑으로 흐른다. 같은 적이라도 대책은 달리해야 한다.


▶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인 범저(范雎)는 제(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진(秦)나라의 사신 왕계 (王稽)를 따라 함양(咸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진나라는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 [누란지위(累卵之危)]'고 자국(自國)의 정사를 혹평한 범저를 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범저는 소양왕에게 자신의 장기인 변설(辯舌)을 펼쳐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소양왕 36년(B.C. 271), 드디어 범저에게 때가 왔다.


당시 진나 라에서는 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나라를 공략하여 자신의 영지인 도(陶)의 땅을 확장하려 했다.


이 사실을 안 범저는 왕계를 통해 소양왕을 알현하고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한(韓),위(魏) 두 나라를 지나 강국인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적은 병력을 움직여 봤자 제나라는 꿈쩍도 않을 것이옵고, 그렇다고 대군(大軍)을 출동시키는 것은 진나라를 위해 더욱 좋지 않사옵니다.


가능한 한 진나라의 병력을 아끼고 한,위 두 나라의 병력을 동원코자 하시는 것이 전하의 의도인 듯하오나 동맹국을 신용할 수 없는 이 마당에 타국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략한 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 제나라의 민왕이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초(楚)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離反)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이 온데, 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借賊兵(차적병)]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 준 꼴[齎盜糧(재도량) ]'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전하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 상책(上策)인 줄 아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寸土)이옵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尺地)가 아니옵니까?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賢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이 날을 계기로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저는 승진 끝에 재상이 되어 응후 (應侯)에 봉해졌고, 그의 지론인 원교근공책은 천하 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國 是)가 되었다.


▶ 遠 멀 원. 交 사귈 교. 近 가까울 근. 攻 칠 공.


▶ [참조] 누란지위(累卵之危).


▶ [출전] 史記 范雎列傳


정치의 세계는 사방이 적이다, 먼곳의 적에게 미소를 보내고 가까운 곳에서는 비수를 들이댄다.


원문에 보면 '군사적인 목표가 지형상의 제약하에 놓여 있을 때는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며 먼곳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리하다."고 되어 있다.


이런 이치처럼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혼란한 상황에서는 서로가 이합집산과 권모술수를 총동원하여 각자 최대한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


이런 때일수록 먼 곳에 있는 적은 공격하지 말고 친교를 맺어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적은 멀리 있는 적과 달리 친교를 맺어서는 안된다. 자칫 가까이 하게 되면 자신의 심장부에서 변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의 세계에서는 정치의 뜻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친형제 사이라 할지라도 적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정치에 뜻을 두고 있지 않은 이웃이나 낯선 사람이 가까이 할 만한 상대라고 할 수 있다.








[출전]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

내용]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 범저(范雎)는 제(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진(秦)나라의 사신 왕계(王稽)를 따라 함양(咸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진나라는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고 자국(自國)의 정사를 혹평한 범저를 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범저는 소양왕에게 자신의 장기인 변설(辯舌)을 펼쳐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소양왕 36년(B.C. 271), 드디어 범저에게 때가 왔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으로서실권을 잡고 있었는데,그는 제나라를 공략하여 자신의 영지인 도(陶)의 땅을 확장하려 했다. 이 사실을 안 범저는 왕계를 통해 소양왕을 알현하고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한(韓) 위(魏) 두 나라를 지나 강국인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좋은 계책(得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적은 병력을 움직여 봤자 제나라는 꿈쩍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대군(大軍)을 출동시키는 것은 진나라를 위해 더욱 좋지 않습니다. 가능한 한 진나라의 병력을 아끼고 한 위 두 나라의 병력을 동원코자 하시는 것이 전하의 의도인 듯하오나 동맹국을 신용할 수 없는 이 마당에 타국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 제나라의 민왕(王)이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초(楚)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離反)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이온데,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借賊兵]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 준 꼴[齎盜糧]'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전하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 策)'이 상책(上策)인 줄 아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寸土)이옵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尺地)가아니옵니까?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賢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이 날을 계기로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저는 승진 끝에 재상이 되어 응후(應侯)에 봉해졌고, 그의 지론인 원교근공책은 천하 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國是)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