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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9 計 격안관화(隔岸觀火)

흐르는 물3 2007. 12. 31. 09:28
 

9 計 격안관화(隔岸觀火) : 강 건너 불 보듯 하라.


(隔)은 떨어지다. 안(岸)은 언덕. 격안(隔岸)은 언덕 멀리 떨어져서, 관화(觀火)는 불나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중국에서 자주 사용하는 것이 ‘산에 앉아 호랑이 싸우는 것을 바라본다(坐山觀虎鬪).’ ‘황학루 위에서 배 뒤집어 지는 것 바라본다(黃鶴樓上看飜船).’등이 있다. 상대방이 아무리 강한 조직이라도 반드시 내부적인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 갈등은 언젠가 반드시 표면화되기 마련이다. 가능하다면 상대방 내부 첩자들을 이용하여 적의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 싸우게 하는 것도 이 전략의 한 방법이다. 무리하게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우리말에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상대방의 불행이나 갈등을 간섭하지 않고 그저 바라본다는 소극적인 뜻으로 사용하지만, 원래 뜻은 적의 내분에 개입하지 말고 관망하면서 승리를 거둔다는 적극적인 전략이다.


여기서 불이란 내분을 의미한다. 즉 집안싸움을 일으키라는 말이다.

내분상태에 있는 상대를 기습하면 오히려 적이 단결하게 되어 거꾸로 아군이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지고 적의 자멸을 기다리는 것이 좋다.

행운은 자면서 기다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또한 '격안관화'의 책략이다.


적 내부의 모순이 격화되고 혼란이 일어나 폭란이 생기기를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적은 분열되어 서로 원수가 되며 마침내는 멸망을 자초하고 만다. 이것은 바로 부드러운 수단으로써 유리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책략을 운용함에 있어서의 요건은 적의 내부가 혼란해질 때 경솔히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적들이 일치 단합하여 반격을 해 올 수도 있다. 말하자면 산에 앉아 호랑이 싸움을 구경하는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상대에 내분이 일어나면 관망하라. 적의 내부에 모순이 노출되거나 질서가 혼란해졌을 경우는 조용히 폭거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적들이 서로 반목하거나 원수가 되어 싸우게 되면, 그 기세는 반드시 멸망으로 치닫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예괘의 원리로서 시기에 순응하여 행동으로 옮기면 원만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상대방 내부가 분열되고 모순이 격화되어 서로 알력이 생겨 싸울 때 절대로 조급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 만약 간섭하면 그들은 싸움을 멈추고 연합하여 공동 대응할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정지하여 움직이지 말고 그들을 서로 잔혹하게 싸우게 해서 그들의 힘이 모두 소진되어 와해되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조직 내에서 누군가와 일전을 벌이려고 마음먹었다면 누군가 나를 격안관화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것인가를 떠올려 보아야 한다. 혹시 내 앞에 놓인 모든 갈등의 출발이 누군가의 일정한 시나리오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지를 분석해 보아야 한다.


1.

조조가 하북을 평정할 때 두 차례나 격안관화의 계책을 써서 작은 대가로 큰 승리를 얻는 이야기가 나온다.

원소가 창정 대전에서 참패를 당한 후 마음이 우울하여 병들어 죽게 되었다. 죽기 전에 원소는 유자(遺子) 원상을 계승자로 삼고 대사마로 임명하였다.

조조는 이때 투지가 한창 왕성하여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원씨 형제를 토벌하고 일거에 하북을 평정하려고 기도하였다.

조조의 군사는 파죽지세로 여양을 점령한 다음, 곧장 기주성 아래에 이르렀다. 그러자 원상·원담·원희·고간 등 4로 인마가 합력하여 힘껏 사수하였다.


조조는 연이어 몇 차례 공격을 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이때 모사 곽가가 계책을 드려 말하기를,

"원씨가 큰아들을 폐하고 작은아들을 세웠기 때문에 형제간에 권력 싸움이 일어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그런데 지금 형세가 급하니 서로 구하고 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예 군사를 돌려 남쪽으로 가서 유표를 치며 원씨 형제의 변을 기다리는 것만 못할까 봅니다. 변이 생긴 다음 기주를 친다면 일거에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그의 말대로 가후를 남겨 여양을 지키게 하고 조홍으로 관도를 지키게 한 다음, 자신은 곧 군사를 이끌고 유표를 치러 갔다.

과연 조조가 철수하자 장자 원담이 곧 원상과 계승권을 쟁탈하기 위하여 크게 싸우면서 서로 참살하기 시작하였다. 원담은 원상을 이길 수 없게 되자 조조에게 사람을 보내어 구원을 청하였다.

조조는 이 기회를 타서 다시 북진하여 먼저 원담을 죽여 버린 다음, 원희·원상을 차례로 패배시키고 일거에 하북을 점령하였다.


2.

조조가 두 번째로 격안관화의 책략을 쓴 것은 하북을 점령한 후이다. 당시 싸움에 패한 원희·원상은 요동으로 도망하여 공손강에게로 갔다. 하후돈 등 측근들은 조조에게,

"공손강이 오랫동안 굴복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원희·원상이 또 가담하였으니 장차 우리의 큰 후환이 될 것입니다. 공손강이 아직 군사를 일으키지 않은 틈을 타서 속히 가서 친다면 요동을 가히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조조는 웃으며 말했다.

"제공의 호위를 빌릴 필요도 없을 것 같소. 며칠 후면 공손강이 두 원씨의 머리를 가져올 것이오." 여러 장수들은 모두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공손강이 과연 사람을 보내어 원희·원상의 머리를 가져왔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크게 놀라 조조의 귀신같은 혜안에 감복하여 마지않았다.


조조는 도리어 크게 웃으며,

"과연 봉효(곽가)의 짐작을 못 벗어나는군." 하고 말하며 곽가가 죽기 전에 조조에게 남겨준 편지를 꺼내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듣건대 원희·원상이 요동에 가서 가담했다 하니 명공께서는 절대 군사를 쓰지 마십시오. 공손강은 일찍부터 원씨들이 요동을 병탄 할까 봐 두려워하였는데 이번에 두 원씨가 가서 가담하였으니 반드시 이를 의심할 것입니다. 만약 군사로 치신다면 그들은 힘을 합해 항거할 것이나, 늦추어 준다면 공손강과 원씨는 반드시 서로 도모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원래 원소가 살았을 때 항상 요동을 병탄할 마음을 품고 있어 공손강은 원씨 가족들을 뼈에 사무치게 미워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원씨 두 형제가 와서 탁신하니 공손강은 그들을 없애버릴 생각을 품었는데, 조조가 혹시 군사를 끌고 와서 요동을 칠까 두려워 두 사람을 이용하여 자기를 돕게 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공손강은 원희·원상이 요동에 이르자 즉시 그들을 만나보려 하지 않고 먼저 사람을 보내어 조조군의 동정부터 탐지하게 하였다.


세작이 와서 "조조는 역주(易洲)에 군사를 둔쳐 놓고 있는데 요동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하고 회보하자 공손강은 즉시 원희·원상의 머리를 베어 조조에게 바쳤던 것이다. 이리하여 조조는 칼날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였다.


3.

내가 아무리 상대보다 힘이 강하더라도 관망해야 할 때가 있다. 공격에 앞서서 그들이 서로 갈등하여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손자병법 화공(火攻)편에 보면 손자는 군대를 신중히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격안관화의 뜻과 서로 부합된다.

전쟁은 이익을 쟁취하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만약 승리를 해도 이익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익이 없으면 군대를 움직이지 말고(非利不動), 얻을 것이 없으면 군대를 동원하지 말고(非得不用), 위기가 아니면 싸우지 않아야 한다.(非危不戰)! 군주는 한낱 자신의 분노 때문에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되며, 장군은 자신의 원한 때문에 전투를 벌여서는 안 된다. 우리 조직의 이익에 부합되면 움직일 것이오, 이익에 부합되지 않으면 정지하라.’


격안관화의 전술은 단순히 상대방의 분란을 지켜보는 것뿐만이 아니다. 강한 힘을 가지고도 상황을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병사들의 생존을 책임진 장군에게 승리보다 중요한 것이 병사들의 안전이기 때문이다. 적의 내분이 격화되어 유리한 시기가 성숙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출격하여 힘 안들이고 승리를 쟁취하는 격안관화의 전략은 지혜로운 자들의 승전(勝戰) 방식이다


 건너 불보듯 하다. 우리에게도 쉽게 와닿는 말일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계략이다. 건너편에 불이 나면 그냥 구경이나 하라는 것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적 진영이 자중지란에 빠지면, 조용히 그들의 변란을 기다린다. 횡폭한 세력은 자멸하기 마련이다. 사태의 변화에 순응하며 순리에 따라 행동하라.[陽乖序亂,陰以待逆.暴戾恣睢,其勢自斃.順以動豫,豫順以動.]"



역시나 간단한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이번에도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일화이다.

 관도대전에서의 승리로 원소를 궤멸시킨 조조는 살아남은 원소의 두 아들, 원희(원소의 차남)과 원상(원소의 삼남)을 죽이고자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袁家(원가)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 만리장성을 넘어 이민족의 땅에까지 쳐들어갔다.

 하지만 조조가 신뢰하던 軍師(군사)인 郭嘉(곽가)가 죽어 조조는 크게 상심하고 있었다.

 "봉효(곽가)가 죽은 것은 바로 하늘이 나를 망치려는 것이오."

 그리고 여러 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나이가 나와 비슷하지만 봉효는 한참 적소. 그래서 나는 후사를 그에게 부탁하려 했는데, 이렇게 뜻밖에 요절을 하니 가슴이 미어지는구려."

 곽가를 모시던 사람들이 봉함된 편지를 바치며 말했다.

 "곽공께서 돌아가실 무렵 손수 써서 봉해 놓은 편지이옵니다. '승상께서 만일 이 편지대로 하신다면 요동의 일은 평정될 것이다'고 하셨사옵니다."

 조조는 편지를 뜯어 보고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그 뜻을 몰랐다.

 이튿날, 하후돈이 무리를 이끌고 들어와 품했다.

 "요동태수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賓服(빈복 : 제후가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고 복종하는것)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또 원희와 원상이 가서 의탁했으니 반드시 후환이 될 것이옵니다.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빨리 가서 토벌하는 것이 낫사옵니다. 그래야만 요동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번거롭게 虎威(호위)를 뽐내지 않아도 며칠 후면 공손강이 스스로 원희와 원상의 머리를 보내올 것이오."

 여러 장수들은 모두 믿으려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조조는 여전히 군사를 역현에 묶어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후돈과 장료가 들어와서 품했다.

 "요동을 정벌하지 않을 것 같으면 허도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유표가 딴마음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원희와 원상의 수급이 오면 즉시 회군하겠다."

 여러 사람들은 은근히 비웃었다. 그 때 갑자기 사람이 들어와 공손강이 원희와 원상의 수급을 보내왔다고 아뢰었다. 여러 사람은 모두 크게 놀랐다.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곽봉효의 예상이 틀리지 않는구나!"

 조조는 사자에게 큰 상을 내리고 공손강을 양평후 좌장군에 봉했다. 여러 관원이 조조에게 물었다.

 "어째서 곽봉효의 예상이 틀리지 않다고 하시옵니까?"

 조조는 곽가의 편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원희와 원상은 요동으로 몸을 의탁하러 갔다고 하는데, 명공께서는 절대로 쳐들어가지 마소서.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원씨가 자기의 땅을 빼앗을까봐 두려워 했는데 원희와 원상이 의탁하러 갔으니 반드시 의심을 할 것이옵니다. 만일 군사를 이끌고 가서 공격하면 반드시 힘을 합해 맞설 것이니 간단히 쳐부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격을 늦추고 있으면 공손강과 원씨는 반드시 자기들끼리 죽이고자 획책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명공께서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시면 되옵니다.>




*. '격안관화'라...'강 건너 불보듯하다'. 뭐, 그럴듯 하긴 하다. 하지만 '강 건너 불보듯하다'. 뭔가 이상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가? '삼십육계'를 계속 봐 왔으면 뭔가 이상한 게 있을 것이다. 무슨 얘기냐고? 바로 제5계인 '진화타겁'의 이야기이다. '진화타겁', '불 난 집에 들어가 도둑질하다'. 적진에 생긴 변란을 놓치지 말고 치고 들어가 공격하라는 뜻이었다. '불 난 집에 들어가 도둑질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강 건너 불보듯 하라'니. 도대체 어쩌라는 소리인가? '삼십육계'에는 '성동격서'와 '암도진창' 같은 비슷한(...) 계략도 있지만, '진화타겁'과 '격안관화' 같은 정반대(...)의 계략도 있다.

 그러게 삼십육계는...내가 정리하고는 있지만...거 참...ㅡ,.ㅡ


*. 郭嘉(곽가). 삼국지(정사와 연의를 통틀어)에 등장하는 모사들 중 그야말로 '천재군사'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개인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천재요절이라던가...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만이 안타까울 뿐...


'삼국지 연의'에는 조조가 하북을 평정할 때 기다림으로 승리를 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조조에게 패한 원소의 아들 원희·원상은 요동으로 도망하여 공손강에게로 갔다. 하후돈 등 측근들은 조조에게, "공손강이 오랫동안 굴복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원희·원상이 또 가담하였으니 장차 우리의 큰 후환이 될 것입니다. 공손강이 아직 군사를 일으키지 않은 틈을 타서 속히 가서 친다면 요동을 가히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조조는 웃으며 말했다.


"제공의 호위를 빌릴 필요도 없을 것 같소. 며칠 후면 공손강이 두 원씨의 머리를 가져올 것이오."


여러 장수들은 모두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공손강이 과연 사람을 보내어 원희·원상의 머리를 가져왔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크게 놀라 조조의 귀신같은 혜안에 감복하여 마지않았다.


이때 조조는 도리어 크게 웃으며, "과연 봉효(곽가)의 짐작을 못 벗어나는군." 하고 말하며 곽가가 죽기 전에 조조에게 남겨준 편지를 꺼내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듣건대 원희·원상이 요동에 가서 가담했다 하니 명공께서는 절대 군사를 쓰지 마십시오. 공순강은 일찍부터 원씨들이 요동을 병탄할까봐 두려워하였는데 이번에 두 원씨가 가서 가담하였으니 반드시 이를 의심할 것입니다. 만약 군사로 치신다면 그들은 힘을 합해 항거할 것이나, 늦추어 준다면 공손강과 원씨는 반드시 서로 도모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이렇게 기다려서 승리는 취하는 전략을 가리켜 隔岸觀火 (격안관화)의 전략이라 부른다


이때 이것은 소극적으로 넋을 놓고 강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상대의 정황을 잘 살피면서 주시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적극적인 기다림이다. 즉 기다려서 운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강한 힘을 누르고 억제함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승리하는 것이다,


또 병법의 대가 손자는 "강물에 거품이 일 때는 강을 건너지 마라 강물이 거품이 일 때는 상류에서 강물이 불어 났다는 신호이므로 이때 강을 건너면 화를 입는다" 라고 말한다,


강을 건너려 할 때 거품이 인다는 것은 상류에 비가 많이 내려 홍수가 났다는 의미 일 수도 있고, 적군이 강을 막아 급류가 형성되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에 섯불리 강을 건너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거품을 보는 것은 안목이다.


강물은 평소와 다름없이 흐르고, 나는 그것을 충분히 건널 수 있지만, 강을 건너기 전에 그것을 잘 살펴 내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닥칠 화를 제거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이 두가지 사례는 기다림으로서 화를 면하는 경우와 기다림으로서 더 큰 이익을 얻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변화"의 관점에서는 지나치게 소심하고 "안주"하는 것으로 해석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변화와 기다림의 사이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다함을 알고 변화를 하되. 그 변화는 때를 아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 무조건 변화를 생각하거나, 다하였음에도 변화하지 않는 것은 모두 잘못된 일이다, 먼저 지금 내가 접하고 있는 모든 상황을 정돈을 해보자, 가정에서는 변화가 필요치 않은가? 회사에서는 막혀 있지 않은가? 대인관계에서는 궁하지 않은가? 지금 내가 가진 자산의 운용은 그 흐름이 강물처럼 유연한가?


그리고 그중에서 막혔다고 여겨지는 것을 우선순위에 올리고 그것을 소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때를 아는 것이어야하고, 소통의 방식 역시 좀 더 쉬운 방향,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닌 독창적이고 힘들면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그것을 통하기 위해 쉬운 길만 찾는다면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후퇴이며 이러한 후퇴는 곧 스스로를 쇠퇴의 길로 몰아 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혹은 내 안에서 이런 질서를 유연하게 체득해야 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변화하고, 낮과 밤이 교대 하듯이 성한 것은 쇠하고 , 쇠하면 성한다는 이치를 내 안에 받아 들이고, 변화를 거부하거나 그렇다고 애써 변화를 꿈꾸지도말고, 변화를 두려워 하지도 않으며 변화를 기다리지도 않는 것이다.


변화란 지금도 일어나는 순환이며 생명이다


인체 역시 태어나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하지만 우리는 단지 10년전의 사진을 꺼내 볼 때만 그 변화를 깨달을 뿐, 불과 10분전, 한 시간전과 지금의 내가 다름을 알지 못하는 것 처럼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사건들과 기회들을 보고도 어제와 오늘의 변화를 알지 못하다가 어느날 변해버린 세상을 탓하면서 후회하는 것이 인생이다.


변화는 내가 살아가는 생명이고 몸짓이고, 공기고 호흡이다,


유연하게 변화하고 궁하기전에 다함을 깨닿고 궁하기전에 변하고 변함으로서 소통하여 쇠퇴함이 없을 것이되, 그 변함을 정해진 때로 여기거나 맹목적인 목표로 삼아 봄에 추수를 준비하고 가을에 파종을 생각하는 어리석음은 때를 모르는 것이므로 변화를 통해 오히려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된다.


항상 변화를 관찰하고 그것을 내안에 받아들여 하나가 되도록 하라,,,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라 성공하려면 때를 알아야 한다


막을 격 언덕 안 볼 관 불 화


여기서 언덕 은 뜻을 나타내는 뫼산(☞산봉우리)와 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벼랑을 뜻하는 민엄호밑과 함께 깎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간→안은 변음)으로 이루어짐, 산의 (표면)을 깎아 지른 듯한 벼랑, 전하여 물가의 깎아지른 땅과 물과의 (경계)를 말하고, 널리 물가의 뜻이 된다..

(필자는 한자만 보고 왜 물가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

해안선.하안단구..그럴때 사용


격안관화(隔岸觀火)란 말 그대로 강을 사이 두고 불을 보기만 한다는 뜻이다.

강건너 불구경!! ('36계' 中 제9계이다. -_-)


그러나 이것이 어떤 계책으로 쓰였을 적에는 강 건너 붙은 불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불 구경을 하다가 기회를 보아 자기에게 적합하고 또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적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한다면 상대방이 내란 혹은 어떤 갈등으로 혼란이 생겨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적에 이 틈을 타서 자기의 이익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전국(戰國)시대 말기에 진(秦)나라와 조(趙)나라가 생사 판가리를 하게 되었는데 조나라에서는 장군을 잘 못 쓰는 바람에 사직이 경각에 달리게 되었다.


원래 조나라 왕은 실제 참전경험은 조금도 없으면서 병서를 몇 권 읽었다고 흰소리를 탕탕치는 조괄(趙括)이라는 사람의 말을 믿고 그를 대 장군으로 등용하고 명장 염파(廉頗)를 파면시켰다.


결과 조괄은 진나라의 명장 백기(白起)와 장평이라는 곳에서 결전을 벌리게 되었는데 여지없이 패해 조나라 40만 대군이 전멸을 하게 되었고 조괄 자신도 이번 전역에서 살에 맞아 죽었다.


백기는 승승장구로 진군하여 한(韓)나라의 17개 도읍지를 점령하고 조나라의 서울 한단(邯鄲)을 육박해와 조나라는 공포에 떨게 되었다.

정세는 위급했으나 누구도 그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지라 조나라 왕은 단 가마 위의 개미처럼 어쩔 바를 몰라 헤맸다. 이때 소대(蘇代)라는 사람이 조나라 왕보고 자기가 직접 진나라로 가서 진나라에 가서 방법을 대보겠다고 계책을 내놓았다. 다른 방법은 없는지라 조나라 왕은 그러라고 했다.


푸짐한 예물을 들고 소대는 진나라 명장 백기와는 좀 알륵이 있는 범휴(範目+佳)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을 했다.

“무안군(武安君, 즉 백기)이 장평 한 마당 싸움으로 오늘 조나라의 한단까지 쳐들어가게 되었으니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특등 공신이라. 그러나 제가 보기엔 당신에겐 별로 좋은 일이 아닌 것 같구료. 지금 당신은 무안군보다 권세가 더 크지만 때가 되면 그의 아래에 앉아야 될 것이 아닙니까... 백기란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이라던데...”


소대의 말을 듣고 한 동안 아무 말도 없던 범휴는 한식경이 지나서야 그럼 무슨 방법이 있느냐 물었다. 그러자 소대는 “조나라야 이제 아무 것도 아닌데 그냥 싸워 백기가 공을 이루게 하기 보다 전쟁을 끝내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자연 무안군의 병권(兵權)을 빼앗아내게 되니 당신의 자리도 튼튼할 것 아닙니까.”라고 했다.


그렇다고 생각을 한 범휴는 이튿날 진나라 왕을 찾아가 “이제는 싸운지도 오래 되어 병졸들도 맥이 진하고 국고(國庫)도 어려운데 조나라보고 성곽 몇 개를 내놓으라 하고 휴전(休戰)을 하는 것이 좋겠나이다.”라고 했다.


범휴의 말을 들은 진나라 왕은 과연 백기보고 군사를 철수하라는 영을 내렸다. 결국 조나라에서는 성곽 6개를 내놓고 사직을 보전하게 되었다.


오라지 않으면 조나라의 서울 한단을 점령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철수 명령을 받은 백기는 속으로 좋지 않았으나 이 것이 범휴의 작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어쩔 수 없었다.


2년여가 지난 뒤 진나라 왕은 다시 조나라를 치려고 했으나 백기는 병을 칭탁하고 나가지 않았다. 노발대발한 진나라 왕은 백기의 관직을 삭탈하고 함양(咸陽)에서 추방했다. 그러자 이때라 범휴는 백기가 다른 나라로 가면 진나라에 불리하니 살려두면 나쁘다고 했다. 결국 진나라 왕은 백기에게 칼을 보내어 자살하게 했다.


조나라에서는 진나라에 가서 불을 붙여 놓고 “강”을 사이 두고 그 불이 타오르는 것을 구경만 하면서 자기의 잇속을 챙기게 되었다.




강 건너 불구경한다.


'36계' 제9계에는 이 책략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적 내부의 모순이 격화되고 혼란이 일어나 폭란이 생기기를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적은 분열되어 서로 원수가 되며 마침내는 멸망을 자초하고 만다.

이것은 바로 부드러운 수단으로써 유리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책략을 운용함에 있어서의 요건은 적의 내부가 혼란해질 때 경솔히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적들이 일치 단합하여 반격을 해 올 수도 있다.

말하자면 산에 앉아 범싸움을 구경하는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우리말에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상대방의 불행이나 갈등을 간섭하지 않고 그저 바라본다는 소극적인 뜻으로 사용하지만, 원래 뜻은 적의 내분에 개입하지 말고 관망하면서 승리를 거둔다는 적극적인 전략이다.


격(隔)은 떨어지다. 안(岸)은 언덕. 격안(隔岸)은 언덕 멀리 떨어져서, 관화(觀火)는 불나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중국에서 자주 사용하는 것이 ‘산에 앉아 호랑이 싸우는 것을 바라본다(坐山觀虎鬪).’ ‘황학루 위에서 배 뒤집어 지는 것 바라본다(黃鶴樓上看飜船).’등이 있다.

상대방이 아무리 강한 조직이라도 반드시 내부적인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 갈등은 언젠가 반드시 표면화되기 마련이다. 가능하다면 상대방 내부 첩자들을 이용하여 적의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 싸우게 하는 것도 이 전략의 한 방법이다. 무리하게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상대방 내부가 분열되고 모순이 격화되어 서로 알력이 생겨 싸울 때 절대로 조급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 만약 간섭하면 그들은 싸움을 멈추고 연합하여 공동 대응할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정지하여 움직이지 말고 그들을 서로 잔혹하게 싸우게 해서 그들의 힘이 모두 소진되어 와해되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조직 내에서 누군가와 일전을 벌이려고 마음먹었다면 누군가 나를 격안관화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것인가를 떠올려 보아야 한다. 혹시 내 앞에 놓인 모든 갈등의 출발이 누군가의 일정한 시나리오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지를 분석해 보아야 한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격안관화의 전략으로 원소의 두 아들을 제거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원소(袁紹)의 두 아들 원상(袁尙)과 원희(袁熙)는 조조 군대에 쫓겨서 요동의 태수 공손강(公孫康)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투항하였다.

조조의 여러 장군들은 이 기회에 요동을 공격하여 두 형제를 잡아야 한다고 공격을 주장하였다. 조조는 웃으면서 요동의 태수가 두 형제의 목을 가져올 것이라고 장담하며 군대를 물리고 요동의 정세를 관망하는 격안관화의 전략을 취하였다.

한편 요동의 태수는 두 형제가 투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하였다. 만약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요동으로 진격하여 온다면 그들과 공동으로 연합하여 대항하려고 하였지만 조조의 군대가 물러났다는 말을 듣고 조조를 위하여 두 형제의 목을 쳐서 조조의 군대로 보냈다.

조조는 군대를 동원하는 힘을 들이지 않고도 원하는 목표를 얻었는데 상대방의 내분을 미리 예상하고 그들이 서로 싸우기를 기다리는 여유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조조가 무리하게 군대를 동원하여 요동을 공격하였다면 그들은 서로 서로 연합하여 죽기살기로 대항하였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상대보다 힘이 강하더라도 관망해야 할 때가 있다.

공격에 앞서서 그들이 서로 갈등하여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손자병법 화공(火攻)편에 보면 손자는 군대를 신중히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격안관화의 뜻과 서로 부합된다.

‘전쟁은 이익을 쟁취하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만약 승리를 해도 이익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익이 없으면 군대를 움직이지 말고(非利不動), 얻을 것이 없으면 군대를 동원하지 말고(非得不用), 위기가 아니면 싸우지 않아야 한다.(非危不戰)! 군주는 한낱 자신의 분노 때문에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되며, 장군은 자신의 원한 때문에 전투를 벌여서는 안 된다. 우리 조직의 이익에 부합되면 움직일 것이오, 이익에 부합되지 않으면 정지하라.’


격안관화의 전술은 단순히 상대방의 분란을 지켜보는 것뿐만이 아니다.

강한 힘을 가지고도 상황을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병사들의 생존을 책임진 장군에게 승리보다 중요한 것이 병사들의 안전이기 때문이다.

적의 내분이 격화되어 유리한 시기가 성숙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출격하여 힘 안들이고 승리를 쟁취하는 격안관화의 전략은 지혜로운 자들의 승전(勝戰) 방식이다